우리는 슬퍼서 우는 것일까, 아니면 우니까 슬퍼지는 것일까? 우리는 즐거워서 웃는 것일까, 아니면 웃다보니 즐거워지는 것일까? 우리는 당연히 슬퍼서 우는 것이고, 즐거워서 웃는 것이라고 생각을 한다. 그런데 울다 보면 별 것도 아닌 일이 더 서럽고 슬프게 느껴지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또한 별 것도 아닌 일이 웃다보니 더 재미있게 느껴지는 경우도 왕왕 있다.
제임스-랑게 설
미국의 심리학자 윌리엄 제임스는 사람은 슬퍼서 우는 것이 아니라 울기 때문에 슬픈 것이고, 재미가 있어서 웃는 것이 아니라 웃기 때문에 재미있게 느끼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인간은 일부러 웃음을 짓다보면 덩달아 즐거워지고, 울다보면 그냥 슬퍼진다는 것이다. 비슷한 시기에 같은 주장을 한 덴마크의 칼 랑게와 제임스의 이름을 붙여 이러한 이론을 제임스-랑게설(說)이라고 한다.
제임스-랑게 설은 비록 신랄한 비판을 받았더라도 정동에서 생리적 변화의 중요성을 밝힌 공적은 지금도 누구나 인정하고 있다.
또 다른 정동 이론 가운데 “정동 2 요인 이론”이라는 것이 있다. 이 이론은 샤흐터(Shachter)라는 저명한 사회심리학자가 주장한 이론으로서 그 때까지의 견해를 완전히 뒤집는 혁명적인 이론이었다. 샤흐터 이전까지는 흥분에는 거기에 걸맞는 생리적인 반응이 있다고 여겨졌다.
모든 흥분의 생리적 반응은 동일하다
사람이 슬퍼할 때에는 슬픔에 대응하는 독특한 생리적인 반응이 있고, 또 기뻐할 때에는 기쁨에 대응하는 생리적인 반응이 나타난다는 식이다. 여기에 대하여 샤흐터는 흥분하게 된 이유가 기쁨에서이든 슬픔에서이든 분노에서이든가에 상관없이 생리적인 반응은 모두 동일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생리적으로 흥분해 있다는 것만을 단서로 자신의 현재 감정이 무엇인가를 정확하게 아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자신이 “지금 생리적으로 흥분해 있다”라는 생각과 그 상황에서 자신이 어떤 감정 때문에 흥분하고 있는가를 아는 “정동의 라벨링”의 두 가지 요인이 있어야 비로소 “정동에 대한 인지”가 성립한다는 것이 샤흐터의 주장이었다. 다시 말하면 정서체험이란 생리적인 변화가 일어나는 것과 동시에 그러한 변화가 무엇 때문에 일어났는가를 아는 두 가지의 인지가 함께 이루어질 때 비로소 발생한다는 것이다.
샤흐터의 정동2요인 이론을 입증해주는 실험들은 대단히 많다. 대표적인 것에 미국의 사회심리학자 발린스(Valins, S.)의 실험이 있다. 이 실험의 특징이라면 피험자들의 생리적인 반응은 전혀 일으키지 않은 채 사람들이 자신이 흥분해 있다고 믿게 만들었다는 데에 있다. 정동 2요인 이론에 관련된 실험은 생리적인 반응을 실제로 일으키기 위하여 아드레날린 주사를 놓는 것이 보통이다.
인지적 흥분도 착각을 부른다
이 실험에 참가하는 대학생들에게는 누드사진을 보고 있을 때의 생리적인 반응을 측정하는 것이 실험의 목적이라고 설명된다. 그리고 나서 절반의 학생에는 심박 측정기가, 다른 절반에는 체온을 측정하는 기구가 부착되었다.
심박 측정기를 부착한 학생들은 기구에 연결된 장치를 통하여 자신의 심박음을 듣게된다는 설명을 들었다. 체온을 측정하는 기구가 부착된 학생들은 잡음의 유무가 실험결과에 미치는 영향을 살펴보기 위하여 잡음을 들어야 한다는 말을 들어야 했다. 똑같은 소리를 듣지만 반수는 그 소리를 자신의 심장박동 소리로, 반수는 단순한 잡음이라고 생각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이러한 기구들을 부착한 후 학생들은 다음의 네 그룹으로 나뉘어졌다
(1)심박수 상승 그룹: 10매의 슬라이드 중 특정한 5장을 보고 있을 경우 심박수가 증가한다
(2)심박수 하강 그룹: 10매의 슬라이드 중 특정한 5장을 보고 있을 경우 심박수가 감소한다,
(3)잡음 상승 그룹: 10매의 슬라이드 중 특정한 5장을 보고 있을 경우 잡음수가 증가한다
(4)잡음 하강 그룹: 10매의 슬라이드 중 특정한 5장을 보고 있을 경우 잡음수가 감소한다,
자신의 심장박동음을 듣게 된다는 설명을 들었던 피험자들은 듣고 있는 것이 자신의 심장 박동음이라고 생각했지만 사실 그것은 인공음이었다. 피험자들의 신체적 반응과는 전혀 관계없이 특정한 사진이 제시될 때, 조건에 따라 템포가 빠르거나 늦은 소리가 들리도록 고안된 인공음이었다. 따라서 이 네 그룹 가운데에서 자기가 흥분했다고 느낄 수있는 그룹은 첫번째 그룹뿐이었다.
실험이 끝난후 슬라이드에 대한 평가가 이루어졌다. 결과를 보면 심박수가 빨라진 상황에서 보았던 슬라이드에 대한 평가가 그렇지 않은 그것에 비하여 월등하게 높았다. “이렇게 내 심장이 두근거리는 것을 보면, 저 사진은 나를 흥분시킬 정도의 좋은 사진임에 틀림없다”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자신의 실제 심장박동음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템포가 빠른 소리를 듣다보니 자기가 흥분했다고 착각해버렸다. 인공적으로 유도된 머리만의 흥분이었을 뿐인 데에도 자기가 실제로 흥분했다고 착각해버린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착각을 바탕으로 지금 보고 있는 누드사진 때문에 자기가 흥분했음이 틀림없다는 또 다른 착각을 하고 만 것이다.
영화와 드라마의 OST, 이런 착각을 노린다
시원치 않은 공포영화일수록 음향효과로 한몫 보려는 경향이 있다. 스토리 자체가 뻔하다 보니 관객들이 지루해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이다. 시도 때도 없이 번개가 치고, 불안감을 조성하는 효과음만 난무한다. 큰소리를 들으면 사람들은 흥분하기 마련이다. 누구나 가슴이 두근두근거린다. 이 상황에서 사람들은 자기가 흥분한 것이 소리 때문이라고 생각할까, 아니면 영화가 무서워서 그렇다고 생각할까?
아무리 시시한 공포영화라도 갑자기 큰 소리가 나면 사람들은 놀라기 마련이다. 사람은 소리에 대단히 민감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생리적인 흥분상태에 빠진다. 이 때 왜 흥분하게 되었는가를 알려는 프로세스가 진행된다.
그 결과 “이렇게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보면 이 영화는 무서운 것임에 틀림없다”라는 잘못된 판단을 하게 된다. 그리고 영화관을 나오면서 "그 영화 괜찮네"하고 평가를 높이하게 된다. 사실은 소리 때문에 흥분을 한 것이지만 영화가 무섭기 때문이라는 잘못된 인지를 함으로써 영화에 대한 평가 자체가 높아진 것이다.
요즈음 드라마가 배경음악에 신경을 쓰는 것도 이러한 우리들의 착각을 이용하기 위함이다. 드라마가 슬퍼서 울고 싶은 것인지, 노래가 슬퍼서 울고 싶은지를 헷갈리게 하기 위해서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