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에서는 사랑하는 사람이나 대상을 잃게 되는 현상을 대상상실이라고 부른다.

모라토리엄 인간형으로 유명한 일본의 정신분석학자 오코노기(小此木)는 사랑하던 사람이나 애완동물과의 이별만이 아니라 대상상실을 좀 더 포괄적으로 보고 있다.

  근친자의 죽음이나 실연: 사랑하거나 의지했던 대상의 죽음이나 이별

  익숙했던 환경이나 고향을 떠나거나 지위, 역할 등을 상실하는 것

  자신의 자랑거리였던 소유물이나 신봉하던 이상이 무너지는 경우

이 가운데 실연은 부모나 친척의 죽음과 함께 우리들이 체험하기 쉬운 대상상실의 하나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실연이라는 대상상실 후 초기단계에 우리는 다양한 심리를 체험한다. 슬픔이란 누구나 겪을 수밖에 없는 공통적인 감정일 것이다. 하지만 실연 후 우리가 겪게 되는 감정은 슬픔만이 아니다. 슬픔 이외에도 대단히 복잡한 감정이 뒤따라오기 마련이다

  상대에의 집착: 더 이상 만날 수 없는 상대를 기억 속에서 재생시킴으로써 실연의 아픔을 삭이려한다

  부인의 심리: 상대는 진짜로는 나를 좋아하고 있다든지 언젠가 내 곁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믿으려고 한다

  보복의 심리: 무언 전화를 건다든지 상대에 대하여 욕을 하고 다닌다. 죽이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한다. 특히 상대가 다른 파트너가 생겨 연애가 종말을 맞이한 경우 이러한 심리는 증폭된다

  상대를 이상화하거나 비하: 헤어진 상대는 정말 좋은 사람이었다고 이상화하는 심리와 이와 반대로 “형편없는 사람”이랑 헤어지게 돼서 너무나 잘 됐다는 식으로 상대를 비하하며 실연의 상처를 달래려 한다

  후회와 죄악감: 교제 중에 그런 일을 하지 말았어야 했는 데라든지 내가 만일 그때 조금만 참았더라면 지금도 함께 있을 터인 데라는 생각이 자주 떠오른다

  탐닉에의 도피: 알코올, 성적인 쾌락, 취미나 도락에 몰두하거나 종래라면 마음에 썩 들지 않는 사람과 사귀기도 한다

적응에의 도피: 갑자기 일에 몰두한다든지 평소에는 꺼려하던 사회활동에 나서기도 한다

  질병에의 도피: 실연 후 갑자기 몸이 아프다. 급격하게 살이 찌거나 마른다. 이런 사람들의 경우는 병에 걸림으로써 현실로부터 도피하려는 심리가 근저에 자리잡고 있다.

  조적(躁的) 방위: 태연을 가장하려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명랑하게 행동한다.

 대상상실 초기 단계에 나타날 수밖에 없는 이러한 심리나 감정에 어떤 식으로 대처해야 할까? 프로이트가 말하는 애도작업(mourning work)이 참고가 될 것이다. 애도작업 혹은 상(喪)작업이란 대상상실로 초래되는 슬픔과 괴로움을 겪으면서 회복해가는 과정을 말한다.

애도작업의 3단계

애도작업은 다음과 같은 3단계로 이루어지는 것이 보통이다. 우선 첫 번째 단계로서 상대를 잃었다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단계이다. 사실 이 단계가 어렵다. 사람이면 누구나 갖기 마련인 긍정적인 착각 때문이다.

긍정적 착각이란 자기의 운, 외모, 능력에 대하여 과도하게 높이 평가하는 우리들의 심리적인 경향이다. 이러한 착각 때문에 자기는 다른 사람과 다르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런 까닭에 다른 사람은 어떨지 몰라도 자신의 경우는 상대가 진짜로는 나를 좋아하고 있다든지 언젠가 내 곁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믿으려고 하고 또 믿고 싶어한다.

 하지만 명심할 것은 연애에서 한번 떠나간 버스는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특히 슬픔과 미련에서 허우적거릴 때 떠나간 버스는 돌아오지 않는다. 이러할 때 버스가 돌아오지 않는 것이 본인의 성장에도 좋다. 적어도 이렇게 마음을 다 잡아두면 애도작업의 첫 단계를 그럭저럭 넘어갈 수 있다.

두 번째 단계는 상대를 잃어버렸다는 것을 실감하면서 쏟아지기 마련인 슬픔과 괴로움의 감정을 받아들이는 단계이다. 정신분석학자나 임상심리학자들은 이 단계를 중요시하며 슬픔에 정면으로 맞설 것을 권고한다. 슬픔을 피하려 다른 사람을 찾아 연애에 빠지는 식의 행동은 본인의 성장에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강조한다.

슬픔에 맞서 그것을 극복함으로써 다른 사람의 슬픔도 이해할 수 있는 성숙한 인간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슬픔과 다양한 감정을 극복함으로써 다른 사람의 감정을 진심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 이것이야먈로 실연의 유일한 축복일지 모른다.

 마지막으로 출구가 도저히 보이지 않던 상태를 넘어 생활 속에서 새로운 희망을 갖게 되는 단계이다. 이 때에는 떠나간 버스가 다시 와도 좋다. 하지만 그 버스를 타지 않을 가능성이 높고 만일 타게 된다면 모든 것을 같이 한다는 것의 소중함을 헤어지기 전보다 절실하게 느낄 수 있을 지도 모르겠다.

 실연은 다른 대상상실과 마찬가지로 효과적으로 극복만 한다면 자신의 성장에 도움이 되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것은 너무나 비참하기 때문에 한번 겪어보라고 농담으로라도 권하고 싶지 않다. 인간이 덜 되도 좋으니, 이 글을 읽는 분들은 실연을 겪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 솔직한 바람이기도 하다. 지금 실연하고 계신 분, 모든 것이 막막하게 보이더라도 인생만사 마음먹기 마련이다. 게다가 실연에는 세월이라는 특효약이 있지 않은가. 약발이 너무 늦게 듣는 것이 문제이긴 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