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년대에 LSD가 급속하게 퍼져 나간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우선 일찌감치 LSD가 안전한 약물이라는 판정이 내려진 데에 가장 큰 이유가 있었다.

시드니 코헨은 LSD의 부정적 효과를 종합한 보고서를 발간했다. LSD 경험이 있는 5천명을 조사한 결과 1천 번의 복용 당 1.8명의 정신질환자가 발생했고 1.2명이 자살을 시도했으며 0.4명이 자살에 성공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러한 결과를 두고 코헨은 LSD가 만들어내는 환각 반응의 놀라운 영역을 고려해볼 때, LSD는 대단히 안정된 약물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물론 남용은 위험하다는 단서를 다는 것을 잊지는 않았다.


빌 게이츠도 LSD트립 경험이 있었다

두 번째 이유로는 LSD를 경험한 사람들 가운데에 유명인이 많았다는 점이다. 올더스 헉슬리를 필두로 앨런 와츠, 앨런 긴즈버그, 개리 그란트, 비틀즈, 수전 블랙모어, 켄 키지, 카림 압둘 자바..... 이 가운데에서도 특히 헉슬리, 와츠, 긴즈버그는 LSD를 찬미하고 적극적으로 사용할 것을 주장했다. 그들은 사이키델릭을 통해 세계평화를 이루고 세상을 진보시킬 수 있다고까지 믿었다.


또한 훗날 유명해진 인물 가운데에도 LSD를 복용한 사람이 많았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세계 최고의 부자 빌 게이츠로 그는 1994년 플레이보이지와의 인터뷰에서 그가 LSD를 복용한 적이 있다고 밝혔다. 애플컴퓨터의 스티브 잡스도 LSD 트립의 경험이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생애에서의 유익한 경험의 하나로 거론하고 있을 정도이다.


세 번째로는 LSD 전도사를 자처하는 인물이 많았던 것을 들 수 있다. 대표적인 인물이 앨 허바드(Al Hubbard) 대령. 2차 대전 때 OSS(군사전략국)에 근무했던 첩보원 출신으로 우라늄광 사업으로 막대한 부를 쌓았다. 그는 1950년대 초반부터 프리랜서 LSD사도를 자처하며 LSD 보급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그가 롤스로이스의 뒷 트렁크에 LSD를 싣고 다니며 LSD교에 입교시킨 사람은 6천명에 달했다고 전해진다.


그가 입교시킨 사람들 가운데에는 과학자, 정치가, 정보원, 외교관 들이 많았으며 성직자도 상당수 있었다고 한다. 그는 후에 가짜 박사학위를 사서 LSD를 통한 정신치료에 직접 나서기도 했다. 앨 허바드는 티모시 리어리, 올더스 헉슬리와 함께 LSD 역사상 가장 중요한 3명의 인물 가운데 하나였다.


이 때만 해도 LSD는 일반사람에게 전혀 알려져 있지 않았다. 아는 사람들끼리만 맛보는 세계였던 것이다. 1963년 무렵부터 사정이 변하기 시작했다. “룩(Look)”, “새터데이 이브닝 포스트(Saturday Evening Post)”와 같은 대중지에 LSD에 관한 기사가 실리기 시작했다. 거리에서 마약 밀매꾼들이 LSD를 팔기 시작했다. 1963년 5월 티모시 리어리와 리처드 앨퍼트는 하바드대에서 추방된다. 1965년 2월 오즐리 스탠리가 최초로 LSD 밀조에 성공한다.


랩 보이들이 다 망쳤다


세상이 이렇게 돌아가자 호기심에 가득 찬 보통 사람들이 LSD로 몰려들었다. 그 때까지 LSD가 안전하다고 했지만 이것은 의사들이나 연구자 입회하에서 이루어진 LSD실험에서 나온 결과들이었다. 일반 사람들이 아무렇게나 복용했다가는 어떤 결과가 나올지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었다. 사실 감기약도 남용하면 죽을 수 있는 판인데, 환각제의 남용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는 불을 보듯 뻔했던 것이다.


연구자들은 랩 보이(Lab boy: 티모시 리어리와 리처드 앨퍼트를 가리킴)들이 모든 것을 망쳐놓았다고 한탄하면서 사태를 주시하고 있었다. 결국 우려했던 일들이 벌어졌다. 호기심에서 LSD를 먹고 극심한 공포체험을 한 10대들이 정신적인 공황상태에 빠져 정신병원의 병상을 메웠다. 다른 사람이 마시는 음료수에 LSD를 몰래 집어넣고 반응을 보려는 사람들마저 나오는 형국이었다.


라이프지의 기사가 LSD에 철퇴를 가했다. 1966년 3월 25일 라이프지는 LSD를 커버스토리로 다루었다. 제목은 “LSD: 이미 통제를 벗어난 정신 약물의 폭발하는 위협(The Exploding Threat of the Mind Drug that Got out of Control)." 제목도, 참.... LSD가 우리 애들 다 죽인다고 미국의 부모들이 들고 일어 낫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겠다.


하지만 라이프지의 기사가 터져 나오기 전인 1966년 3월 산도즈 제약은 이미 LSD의 회수에 나서고 있었다. 그 때 이미 LSD는 돌아올 수 없는 선을 넘어서 있었던 것이다. 66년 10월 캘리포니아주가 LSD를 불법화한다. 1967년 미국의 모든 주에서 LSD가 불법화된다. 이로서 합법적인 LSD 시대는 막을 내린다.


그러나 LSD가 심리학자들에게 미친 영향력은 엄청 났다. 생각해 보라. 불법화되기 까지의 24년간 도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LSD를 비롯한 약물들을 경험했고, 또 얼마나 많은 연구가 진행되었던가를. 사실 60년대 초까지만 해도 LSD를 합성한 호프만 박사가 노벨상을 수상하는 것을 누구나 당연시하는 분위기였다.


라이프지 원문은 여기입니다. 라이프지를 아카이브해놓은 Psychedelic Library에서는 Psychedelic 관련 문헌은 물론 심리학과 관련된 좋은 책들도 무료로 제공하고 있습니다. 심리학에 관심이 있는 분들에게는 필독의 사이트입니다.

빌 게이츠 인터뷰는 여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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