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는 인지부조화 이론에 관한 실험입니다. 인지부조화 이론이란 사회심리학에서 일세를 풍미한 이론으로 참으로 많은 연구가 이루어졌습니다. 그만큼 훌륭한 연구도 많아, 지금도 사회심리학 강의에서는 빼놓지 않고 거론되고 있는 것들이 많습니다. 오늘 살펴 볼 것은 그 가운데에서도 가장 유명한 것의 하나인 애론슨과 밀즈의 가입의례에 관한 실험입니다.

원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Aronson, E. & Mills, J. (1959). The effect of severity of initiation on liking for a group. Journal of Abnormal and Social Psychology, 59, 177-181

 

얼마 전 한 체육대학의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이 물의를 빚은 적이 있었다. 선배들이 남자 신입생들은  팬티만, 그리고 여자 신입생들은 면티와 바지만 남겨놓은 채 옷을 벗게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차림으로  신입생들은 다른 학생들이 지나다니는 정문 앞 큰길에서 노래를 불러야 했다는 것이다.

신입생들을 길들이겠다는 단순 무식한 의도에서 이루어진 행동였겠지만 대학사회에서 여전히 이러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에 충격을 받았던 사람들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 더구나 교수들이 이러한 행동을 하도록 부축이고 있다는 것이 밝혀져 사람들은 혀를 찰 수밖에 없었다


또한 비슷한 무렵의 한 무용대학에서도 강압적인 체벌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 보도돼 폭력과 강압에 의존하는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이 여전히 잔존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시켜주었다.


사실 이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신입생이나 신참자를 길들이기 위해 무리한 짓을 강요하는 것은 우리 사회에서는 전혀 드물지 않은 현상이다.. 가령 신입생 환영회를 빙자한 술자리.


요즈음은 좀 줄어든 듯도 싶지만 해마다 신학기 철이면 과도한 음주를 한 학생들이 사망하는 사건들이 이어지곤 했다. 냉면 그릇으로 소주를 여러 차례 마시고 귀가하던 중, 혹은 음주 후 자다가 구토물이 목에 걸려 사망했다는 식이다. 선배들이 어거지로 먹이는 바람에 몸이 견뎌내지 못한 결과이다.


신고식, 세게 할 것이냐, 약하게 할 것이냐

대학생 사회뿐 아니라 성인사회에서도 사정은 다를 바가 없다. 얼마 전 모 통신사에서 신입사원이 선배사원에게 구타를 당한 사건은 아직 기억에 새롭기만 하다. 이런 식의 구타까지는 아니더라도 신입사원 환영회를 거창하게(?) 하는 회사들이 여전히 존재한다.


냉면사발로 소주 마시기를 강요하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다. 심한 경우에는 냉면사발에 소주 뿐 아니라 온갖 잡동사니를 집어넣고 마시기를 강요한다니, 당하는 입장으로서는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노릇이리라. 심지어는 선배가 자신의 물건까지 한번 담그고 나서 마시라 하는 경우마저 있다니 이쯤 되면 철저한 엽기이다. 이거 읽고 찔리는 넘 분명히 있다.


이러한 식으로 집단에 새롭게 들어오는 구성원에게 환영을 겸하여 행해지는 의례를 총칭하여 가입의례(initiation)라 한다. 신입생, 신입사원 환영회는 가입의례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다. 가입의례의 순기능이라면 새로운 구성원들에게 집단의식을 고양시키고 집단에 대한 충성도나 기존의 집단 구성원에 대한 호의도를 증가시킨다는 것이다.


가입의례에는 엄격한 것도 있고, 반면에 체면치레 정도로 형식에 그치는 것도 있다. 요즈음은 어떤 지 모르겠지만 예전의 군대에서 군기를 잡고 사회물을 뺀다는 명목으로 갓 입대한 신병에게 행해지던, 굴러, 박어의 연속은 엄격한 가입의례의 전형이다. 얌전한 서클에서 간단한 선배들의 환영사로 가입의례를 마무리하는 것은  쉬운 편에 속할 것이다.


어느 편이 효과가 있을까. 다시 말하면 엄격한 가입의례가 집단에 대한 충성도와 기존구성원에 대한 호감도를 높일까? 아니면 반대로 약한 가입의례가 효과적일까? 이러한 문제를 두고 애론슨과 밀즈는 다음과 같은 실험을 실시하였다.


남학생들 앞에서 포르노 소설을 읽어라

우선 실험의 대상은 성에 관한 토론을 하는 성 심리학 서클에 가입 신청을 한 여자 대학생들이었다. 가입을 희망하는 여학생들을 우선 세 그룹으로 나누었다. 첫 번째 그룹은 아무런 가입의례 없이 참가를 희망하는 즉시 무조건 가입이 허락되었다.


두 번째 그룹의 경우 중간 정도의 가입의례를 거쳐야 했다. 남자학생들 앞에서 성에 관한 단어 리스트를 읽는 것이 과제였다. 성에 관한 토론을 여러 사람 앞에서 거리낌 없이 할 수 있느냐 여부를 테스트한다는 것이 명목이었다.  리스트에 적힌 단어들은 성에 관한 것이기는 해도 음란하지는 않았다.


마지막 그룹이 문제였다. 이 그룹에 속한 여학생들은 가장 엄격한 가입의례를 거쳐야 했다. 그들에게 주어진 과제는 두 번째 그룹과 비슷했지만 그 정도가 훨씬 심했다. 두 번째 그룹은 5개의 단어인데 비하여 12단어였을 뿐 아니라  그 단어들은 대단히 음란하고 노골적이었다. fuck, suck, lick 등의 이른바 포레터 워드(four-letter word)의 수준이었다.

이거 생각해보면 그렇게 쉽지 않다. 한글로 된 야설의 클라이맥스 장면에서 등장하는 단어들을 남자들 앞에서 읽는다고 생각해보라. 이것은  남자라도 처음 보는 여학생들 앞에서 맨 정신으로 읽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노골적인 단어를 생면부지의 남자들 앞에서 읽는다는 것은 여간 용기를 필요로 하는 과제가 아니었다. 더구나 이 실험이 실시되었던 1959년은  성 혁명이 시작되기는 커녕 성 혁명이라는 말조차 존재하지도 않았던  보수적인 시대였다.


가입조건이 엄격할수록 집단에 대한 호의도가 높았다

특히 성에 관해 보수적이기만 한 여학생으로 생판 처음 보는 남자들 앞에서 포르노 소설을 읽기란 여간 고역이 아니었으리라. 성에 관해 개방적인 지금도 모르는 남자들 앞에서 성적으로 노골적인 묘사를 거리낌 없이 읽어댈 수 있는 여대생은 그리 흔치는 않을 것이다.


이러한 경과를 거쳐 세 그룹의 학생 모두에게 가입이 허락되었다. 물론 모두 가입이 허가되는 것은 미리 계획된 대로였다. 가입이 허락된 여학생들은  첫날의 토론에는 참여하지 못했다. 기존 회원들이 토론하는 것을 다른 방에서 인터폰으로 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보통 때 토론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를 알아야 한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런데 토론이란 것을 들어보니 한심하기 짝이 없었다. 성행동에 관한 토론이라 기대를 했는데 막상 듣고보니, 그것은 사람이 아니라 개미나 매미와 같은 곤충들의 생식행동에 관한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여학생들이 들었던 것은 실제의 토론이 아니라 미리 녹음된 테이프였다).
 

수치심을 이겨가며 가입에 성공한 사람들의 기대를 뿌리 채 뒤엎는 내용일 수밖에 없었다. 개미가 하루에 열번을 하든 백번을 하든 그게 뭐가 그리 대단하다는 말인가.  매미가 앞으로 하든 뒤로 하든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여학생들은 허탈감과 배신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으리라.


여학생들은 따분하기 그지없는 토론을 들은 뒤,  지금까지 들었던 토론 내용에 어느 정도 흥미를 느꼈는가, 토론에 참여했던 기존회원들에 대하여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등의 15개 항목을 평가해야만 했다. 결과는 어떠했을까?


이 실험의 결과를 보면 가장 엄격한 가입조건, 즉 생명부지의 남성들 앞에서 포르노의 클라이맥스 장면에 나오는 단어들을 읽어야 했던 여학생들이 토론의 내용이 가장 재미있었다고 평가했고 클럽의 구성원에 대한 호의도도 높았다. 가입조건이 엄격하면 엄격할수록 그 집단에 대한 매력이 높아졌던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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