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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고식, 세게 할 것이냐, 약하게 할 것이냐.

by rokea posted Oct 05,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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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집단에 새롭게 들어오는 구성원에게 환영을 겸하여 행해지는 의례를 총칭하여 가입의례(initiation)라 한다. 신입생 환영회신입사원 환영회가 대표적이다. 가입의례의 순기능이라면 새로운 구성원들에게 집단의식을 고양시키고 집단에 대한 충성도나 기존의 집단 구성원에 대한 호의도를 증가시킨다는 것이다.


가입의례에는 엄격한 것도 있고, 체면치레 정도로  그치는 것도 있다어느 편이 효과가 있을까. 다시 말하면 엄격한 가입의례가 집단에 대한 충성도와 기존구성원에 대한 호감도를 높일까? 아니면 반대로 약한 가입의례가 효과적일까? 이러한 문제를 두고 애론슨(Aronson, E..)과 밀즈(Mills, J.)는 다음과 같은 실험을 실시하였다.

   

남학생들 앞에서 포르노 소설을 읽어라

 

우선 실험의 대상은 성에 관한 토론을 하는 성 심리학 서클에 가입 신청을 한 여자 대학생들이었다. 가입을 희망하는 여학생들을 우선 세 그룹으로 나누었다. 첫 번째 그룹은 아무런 가입의례 없이 참가를 희망하는 즉시 무조건 가입이 허락되었다.

 

두 번째 그룹의 경우 중간 정도의 가입의례를 거쳐야 했다. 남자학생들 앞에서 성에 관한 단어 리스트를 읽는 것이 과제였다. 여러 사람 앞에서 성에 관한 토론을 거리낌 없이 할 수 있느냐 여부를 테스트한다는 것이 명목이었다. 리스트에 적힌 단어들은 성에 관한 것이기는 해도 음란하지는 않았다.

 

마지막 그룹이 문제였다. 이 그룹에 속한 여학생들은 가장 엄격한 가입의례를 거쳐야 했다. 그들에게 주어진 과제는 두 번째 그룹과 비슷했지만 그 정도가 훨씬 심했다. 두 번째 그룹은 5개의 단어인데 비하여 12단어였을 뿐 아니라 그 단어들은 대단히 음란하고 노골적이었다.

 

이거 생각해보면 그렇게 쉽지 않다. 한글로 된 야설의 클라이맥스 장면에서 등장하는 단어들을 남자들 앞에서 읽는다고 생각해보라. 이것은 남자라도 어렵다. 처음 보는 여학생들 앞에서 맨 정신으로 읽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노골적인 단어를 생면부지의 남자들 앞에서 읽는다는 것은 여간 용기를 필요로 하는 과제가 아니었다. 더구나 이 실험이 실시되었던 1959년은 성 혁명이 시작되기는 커녕 성 혁명이라는 말조차 존재하지도 않았던 보수적인 시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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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입조건이 엄격할수록 집단에 대한 호의도가 높았다

 

특히 성에 관해 보수적이기만 한 여학생으로 생판 처음 보는 남자들 앞에서 음란한 던어들을 읽는 것은  여간 고역이 아니었으리라. 성에 관해 개방적인 지금도 모르는 남자들 앞에서 성적으로 노골적인 묘사를 거리낌 없이 읽어댈 수 있는 여대생은 그리 흔치는 않을 것이다.

 

이러한 경과를 거쳐 세 그룹의 학생 모두에게 가입이 허락되었다. 물론 모두 가입이 허가되는 것은 미리 계획된 대로였다. 가입이 허락된 여학생들은 첫날의 토론에는 참여하지 못했다. 기존 회원들이 토론하는 것을 다른 방에서 인터폰으로 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보통 때 토론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를 알아야 한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런데 토론이란 것을 들어보니 한심하기 짝이 없었다. 성행동에 관한 토론이라 기대를 했는데 막상 들어 보니, 그것은 사람이 아니라 개미나 매미와 같은 곤충들의 생식행동에 관한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여학생들이 들었던 것은 실제의 토론이 아니라 미리 녹음된 테이프였다).


수치심을 이겨가며 가입에 성공한 사람들의 기대를 뿌리 채 뒤엎는 내용일 수밖에 없었다. 개미가 하루에 열번을 하든 백번을 하든 그게 뭐가 그리 대단하다는 말인가. 매미가 앞으로 하든 뒤로 하든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여학생들은 허탈감과 배신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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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학생들은 따분하기 그지없는 토론을 들은 뒤, 지금까지 들었던 토론 내용에 어느 정도 흥미를 느꼈는가, 토론에 참여했던 기존회원들에 대하여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등의 15개 항목을 평가해야만 했다. 결과는 어떠했을까?

 

이 실험의 결과를 보면 가장 엄격한 가입조건, 즉 생명부지의 남성들 앞에서 포르노의 클라이맥스 장면에 나오는 단어들을 읽어야 했던 여학생들이 토론의 내용이 가장 재미있었다고 평가했고 클럽의 구성원에 대한 호의도도 높았다. 가입조건이 엄격하면 엄격할수록 그 집단에 대한 매력이 높아졌다.

 

가입의례의 실험에서 엄격한 조건에 속한 피험자에게는, 생면부지의 남자들 앞에서 포르노 단어들을 읽었다는 인지와 토론의 내용이 형편없었다는 인지라는 두 가지의 인지가 있을 것이다. 두 가지 인지 사이에는 분명히 불협화가 생겨난다.

 

그런 창피함을 무릅쓰고 가입했다면 토론의 내용은 흥미진진해야 한다. 애를 쓴 만큼의 결과를 바라는 것은 인지상정이니까. 그런데 수치를 무릅쓰고 가입해보니, 그 내용이란 게 곤충의 생식에 관한 것이다. 옆방의 토론내용을 들은 엄격한 가입조건의 피험자들로서는 불협화 정도가 아닐 것이다. 이따위 형편없는 토론을 하려고 그런 어려움을 겪었느냐는 탄식마저 나올 지경일 것이다. 되돌릴 수 있다면 되돌리고 싶은 심정이었으리라.


가입조건이 엄격할수록 심리적 불쾌감이 커진다

 

불협화의 정도는 가입의례가 엄격하면 할수록 클 것이고, 신청 즉시 가입이 허락된 그룹에서는 비교적 적을 것이다. 신청 즉시 가입한 사람들로서는 잃을 것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어째 가입이 쉽더라니" 하면서 빼앗긴 시간만 아까워하면 충분하다.

 

누구라도 그러하듯이 인지부조화는 필연적으로 불쾌감을 환기시킨다. 따라서 정신건강을 위해서라도 이러한 불쾌감을 낮추려는 동기가 생길 수밖에 없다. 문제는 이 두 가지 인지 가운데에서 바꿀 수 있는 것은 토의내용이 재미 없었다라는 생각뿐이라는 점이다.

 

남자들 앞에서 포르노소설을 읽었다는 것은 이미 엎질러진 물이니 주워 담을 수 없다. 결국 불쾌감을 저하시키기 위해서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을 선택할 수밖에 없고, 그 결과 토의 내용이 재미있었다고 생각해버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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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지부조화 이론의 예측대로의 결과가 표에 나타나있다. 토론의 내용과 토론멤버에 대한 평가에서 엄격한 조건의 피험자들은 다른 그룹의 피험자들보다도 훨씬 높게 평가하고 있었다. 중간정도의 조건과 "신청 즉시 가입 조건" 사이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어, 가입조건을 엄격하게 할 때만이 호의도를 증가시켰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실험과 같이 가입의례의 엄격함이 집단에 대한 호의도를 증가시킨다는 연구는 상당히 많다. 이미 1966년  Gerard Matheson의 추시에 의하여 애론슨과 밀즈의 연구의 타당성이 입증되었으며, LodewijksSyroit1997년도의 연구도 가입의례 실험 결과를 지지해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