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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앞에서 배신을 당했을 때 : 애쉬의 동조실험(2)

by rokea posted Oct 11,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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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에도 말했듯이 실험에서 동조가 이루어진 중요한 이유의 하나로는 모든 사람들이 일치된 의견을 표명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어떠한 상황에서라도 만장일치가 이루어지는 듯할 때, 거기에 반대되는 의견을 내놓는 것은 쉽지 않다.

 

삐끗하다가는 사사건건 꼬투리나 잡는 까칠한 사람으로 비추어질 우려가 있기도 하고  또 우리가 만장일치는 지고의 선이라는 잘못된 믿음 속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실험협력자들이 만장일치로 틀린 답을 했다는 사실은 과연 동조가 이루어지는 데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고 있었을까? 애쉬는 정답을 말하는 사람의 수를 변화시켜가며 다양한 실험을 실시했다. 진짜 피험자를 두 명 포함시키기도 하고 시종일관 정답을 말하는 실험협력자를 붙이기도 했다.

 

지지자가 하나라도 있으면 오답률은 4분의 1

 

실험 결과를 보면 동의자가 있는 상황에서 오답률은 그렇지 않은 상황에서보다 4분의 1로 떨어졌다. 한 사람이라도 동의하는 사람이 있다면 동조가 일어나는 정도는 급격히 낮아진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몇몇 시행에서는 혼자서 할 때와 비슷한 95% 이상의 정답률을 기록하기도 했다. 이러한 결과는 사람이란 자기의 의견이 지지받을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진실을 말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시사하고 있다. 또한 동조를 일으키는 가장 큰 원동력은 만장일치라는 것을 이 결과는 말해준다.


애쉬의 실험은 이게 끝이 아니었다. 사실 애쉬의 실험의 묘미는 지금부터라고 할 수 있다. 이제부터 실험실에서 배신의 계절이 시작되는 것이다. 즉 쭉 정답을 말해오던 실험협력자가 갑자기 틀린 답을 말하기 시작한다. 의지를 하고 있던 동의자가 갑자기 자기의 의견을 바꾸어 다수 쪽에 붙어버리는 것이다. 물론 다 짜고하는 짓이다.

 

이런 상황에 닥치면 피험자가 느끼는 당혹감은 대단할 것이다. 누구라도 당황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 넘 하나 믿고 쭉 정답을 말해왔는데, 이제부터는 어떻게 해야 한다는 말인가?

 

실험에는 동의자 변절과 동의자 퇴장이라는 두 가지 조건이 있었다. 실험들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이렇다. 우선 처음부터 6번째 시행까지 한 명의 실험협력자(동의자)가 계속 정답을 말한다. 물론 다른 실험협력자들은 오답을 한다. 그러다 7번째 시행부터 정답을 말하던 실험협력자가 갑자기 표변해 오답을 말하기 시작한다. 이것이 동의자 변절 조건이다.

 

애쉬는 이 실험과의 비교를 위하여 또 다른 조건의 실험도 실시했다. 이 조건은 처음에는 앞에 말한 실험과 똑같지만 7번째 시행부터 달라진다. 6번째 시행이 끝나고 7번째 시행으로 접어들 무렵 동의자는 화장실을 간다며 갑자기 실험실에서 퇴장한다. 그리고 영영 돌아오지 않는다. 이것이 동의자 퇴장 조건이다.

 

눈앞에서 이루어지는 배신이 가장 아프다

 

이 두 가지 조건은 7번째 시행에서부터 동의자가 없다는 점은 동일하지만, 한쪽은 변절하여 다수에 붙었고 다른 한 쪽은 동조자가 없을 뿐, 심리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는 점에서 서로 다르다. 즉 동의자 퇴장 조건에서는 설사 다른 사람은 다 틀린 답을 말할지라도 화장실에 간 동의자가 있었다면, 그리고 화장실에서 돌아온다면 자기와 같은 대답을 했을 것이라고 마음속으로나마 지지를 기대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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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은 실험결과를 정리한 것이다. 그림에 나타나 있는 대로 양 조건 모두 9회 이후에서 오답률이 급증한다. 그러한 가운데에도 양 조건은 미묘한 차이를 보이고 있었다.

 

동의자가 퇴장한 조건에서는 7번째와 8번째의 오답률은 거의 0%를 기록했다. 조금 있으면 화장실에 간 동의자가 돌아올 터이니 그 때까지 자기라도 잘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 마음 이해된다.

 

하지만 동지가 돌아올 때까지 나라도 잘하고 있자는 마음은 그리 오래 가지는 않는다. 기다려도 기다려도 동의자가 돌아오지 않자 마음이 달라지는 것이다. 아무리 기다려도 동의자가 나타나지 않는 9번째 시행에서는 갑자기 오답률이 20% 대로 치솟는다. 동의자가 안 오는구나 생각하면서 결국은 집단의 압력에 굴복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것이다.

 

이에 비해 동의자가 변절하는 조건에서는 7번째부터 오답률이 오른다. 하지만 오답률이 아직은 10% 대이다. 동의자가 갑자기 틀린 답을 이야기하자 어리둥절하기는 했지만 아마도 실수겠지”, “저 넘이 미쳤나하는 가벼운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리라. 변절 후 두 번째인 8번째 시행까지도 이러한 마음이 유지된다.

 

하지만 세 번째인 9번째까지 동의자가 틀린 답을 말하자, 이것은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면서 결국은 집단의 압력에 굴복하기 시작한다. 동의자가 배신했다는 것을 알아차린 것이다. 결국 오답률이 30%대로 오른다. 이렇게 보면 모든 일에서 세 번째라는 것이 상당히 중요한 듯하다. 양 조건 모두에서 퇴장과, 변절 후 3번째인 9번째 시행에서 오답률이 급격하게 오르기 때문이다,

 

이 두 조건의 차이라면 전자의 경우에는 눈앞에서 자기의 의견이 버림을 받는다는 것이고 후자에서는 당장은 자기의견이 부정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즉 당장은 자기의 의견을 지지받지는 않지만, 화장실에서 돌아오면 내 의견과 같겠지 하는 심리적인 지지를 기대할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그림에서 보는 대로 모든 시행에서 동의자 퇴장 조건은 동의자 변절조건 보다 오답률이 훨씬 낮다.


이것은 눈앞에서 자신의 의견이 버림받는 것 보다는 심리적으로라도 지지를 얻을 수 있는 상황이 동조에 저항이 일어날 확률이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자기의 의견이 눈앞에서 부정되는 것보다는 당장은 눈앞에 없더라도 동의를 얻을 듯한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을 때, 사람들은 심리적으로 위안을 얻고 그 결과 동조를 거부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이 실험 결과는 말해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