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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이야기이긴 하지만 1960년대를 사이키델릭의 시대라고 한다. 사이키델릭 시대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LSD, 메스칼린, 실로시빈이라는 환각을 가져오는 약물과 그 약물로 경험할 수 있는 세계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다. 약물이라 하면 질겁을 할 사람도 많겠지만, 사실 60년대 중반까지 이러한 약물들은 합법적이었다.

 

약국에서 누구나가 살 수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이러한 약물을 경험할 수 있었다. 대학 주변에는 연구자들이 주최하는 연구용 LSD 체험 모임이 너무나 많았기 때문이다디즈니랜드를 보러 가는 것보다는 LSD 트립(지금도 LSD를 먹는 것을 LSD트립이라고 부른다)을 하는 것이 훨씬 더 쉽다는 말이 공공연히 퍼져 있었을 정도였다.

 

맥각균으로부터 합성하는 LSD, 피요테라는 선인장의 환각 성분인 메스칼린, 멕시코의 버섯에서 추출한 실로시빈은 서로 다른 약물이지만 환각 작용은 비슷했다. 뇌에 작용하는 방식이 다른 데도 불구하고 인체에 미치는 환각작용은 놀라울 정도로 닮아 있었다. 1940년대에서 60년대에 걸쳐 구미에서는 이 세 가지 약물을 이용하여 수많은 연구가 이루어졌다.

 

60년대는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사람들이 아무 제재 없이 약물이 가져다주는 환각의 세계를 마음 놓고 맛본 시대였다. 극소수의 신탁자나 샤만에게나 허용되었던 신비한 세계를 기백만이라는 보통 사람들이 맛본 기이한 시대였다.

 

이런 까닭에 1960년대를 사이키델릭의 시대라고 한다. 사이키델릭은 psychedelos라는 그리이스어를 합성한 말로 psychemind 즉 마음을, delosmanifest, 펼쳐진다를 의미한다. 사이키델릭이란 한 마디로 마음이 펼쳐 친다는 뜻이다. 요즘 흔히들 말하는 의식의 확장(expanded awareness)이라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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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키델릭이란 말을 만든 사람은 험프리 오스몬드(Humphrey Osmond)라는 영국의 정신과 의사였다(요즈음 캐나다에서 먼저 이 말을 사용하고 있었다고 주장하는 연구자도 있다.). 그는 소설 위대한 신세계로 유명한 올더스 헉슬리(Aldus Huxley)에게 메스칼린, LSD등의 약물을 복용시킨 사람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오스몬드야말로 50, 60년대 LSD 연구의 중심에 서있던 연구자였다. LSD로 만성 알코올중독자를 완전히 치료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공표해 세간에 충격을 주기도 했다.

 

올더스 헉슬리는 사이키델릭이란 단어는 문법적으로 이상하니 사이코델릭이란 말을 써야 한다고 오스먼드에 말했던 모양이다. 하지만, 순식간에 사이키델릭이란 말이 정착해버려 어쩔 수가 없었다. 사실 용어란 그렇다. 문법적으로 틀리던 맞던 정착해버리면 끝난다.

 

사이키델릭이란 단어를 만든 사람은 오스몬드였지만, 이 단어를 오늘날에도 통용될 정도로 유명하게 만든 사람은 티모시 리어리(Timothy Leary)였다. 리어리는 하버드대학 심리학 강사로 같은 과 교수였던 리차드 앨퍼트(Richard Alpert)와 함께 실로시빈을 이용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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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어리의 연구는 왜 문제가 됐을까?

 

다른 약물 연구가 정신과의사에 의한 정신질환 치료를 위한 연구인 데 비하여 이들의 연구는 실로시빈이 가져다 줄 수 있는 문화적 영향을 분석하는 문화적 접근이었기 때문에, 결과 여하에 따라서는 상당히 문제가 될 소지를 처음부터 안고 있었다. 아니, 문제가 될 소지를 안고 있는 정도가 아니라, 문제가 안 된다면 그것이 오히려 이상했다,

 

결국 연구의 내용과 과정이 문제가 되어, 이들은 하버드 대학 당국과 심각한 마찰을 빚게 된다. 마찰이 진행되는 동안에도 리어리와 앨퍼트는 잠자코 있기는커녕 오히려 공격적인 태도로 대학 당국과 맞섰다.

 

사실 대학 당국 뒤에는 미국 정부가 있었다. 표면적으로는 리어리, 앨퍼트와 하바드 대학과의 싸움이었지만, 실상은 리어리, 앨퍼트와 미국정부와의 대결이었다.

 

기득권의 이익을 침해할 수 있는 첨예한 문제를 두고, 개인이 정부와 싸워서 이긴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더욱이 리어리와 앨퍼트의 연구처럼 정치, 사회적 문화를 혁명적으로 바꿀 가능성이 많은 연구가 그대로 진행되는 것을 그냥 둘 정부는 없다. 리어리와 앨퍼트의 패배는 처음부터 예견되었다.

 

리어리와 앨퍼트는 공개적으로 실로시빈의 사용을 지지했고 또 인류의 평화와 진보를 위하여 적극적으로 사용해야 한다고까지 주장했다. 이들은 IFIF(International Federation for Internal Freedom:내적 자유를 위한 국제연맹)를 조직하여 대학당국과 정면으로 맞섰다.

 

그리고 4백 명을 대상으로 한 실로시빈의 실험 결과를 하버드대학 당국, 대학생, 대학원생, 교직원, 그리고 실로시빈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 우송했다. 그 보고서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4백명의 피실험자 가운데에 91%가 유쾌한 기분을 맛보았고, 66%는 통찰력이 늘어났으며 또 인생이 바뀌는 경험을 했다고.

 

이것이 문제가 되질 않는다면 오히려 이상했다. 설사 결과가 그렇게 나왔다 하더라도, 공공연하게 대놓고 이야기할 성질의 것은 전혀 아니었다. 약물에 대한 일반사람의 거부감도 그렇거니와 약물이 합법화되어 적극적으로 사용되면 기득권을 포기해야할 이해 당사자가 엄청나게 많았기 때문이다.

 

어떠한 약물이라도 그 이면에는 이익의 사활이 걸린 이해당사자가 너무나 많다. 이런 까닭에 대마를 피우면 신세를 망치지만 그보다 더 해로운 담배나 술은 버젓이 팔리고 있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이유 때문에 지나칠 정도로 과장된 약물이데올로기가 사회구성원에 주입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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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urn on, Tune in, Drop out !

 

결국 이들은 하버드대에서 쫓겨난다쫓겨난 리어리의 주위로 젊은이들이 몰려들었다. 그는 어느 틈에 히피로 대변되는 반문화의 핵심으로 자리 잡았다.

 

기성사회의 눈에 비친 리어리는 너무나 과격하고 위험했다. 그의 모든 것은 “Turn on, Tune in, and Drop out!"( LSD에 취하여, 함께 어울리고, 기존질서에서 이탈하자!) 이라는 슬로건에 집약된다. 이 슬로건은 1966년 뉴욕시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리어리가 한 연설로부터 비롯되어 곧 바로 시대의 유행어로 정착된다.

 

LSD를 비롯한 약물을 사용하여 사회의 인습과 위계구조에서 스스로를 해방시킴으로써 문화적인 변화를 도모할 것을 촉구하는 말이었다. 젊은이들은 이 슬로건에 매료되었고 열광했다. 그 결과 30세 이상의 사람들은 절대로 믿지 말자는 식의 기존 질서에 대한 무시와 도전으로 가득 찬 태도가 젊은이들 사이에 자리 잡게 된다. LSD에는 이러한 슬로건을 현실화시킬 수 있는 가능성이 분명히 있었다. 기득권을 지켜야만 하는 기성사회에서 이러한 움직임을 그냥 놔둘 리가 없었다.

 

결국 LSD는 불법화되고 리어리는 닉슨대통령에 의해 전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인물로 낙인찍힌다. 기성사회의 리어리에 대한 저주는 극에 달해 있었던 것이다. 리어리는 마리화나 소지죄로 30년형을 선고받고 감옥에 처박히는 신세가 된다.

 

단순한 마리화나 소지로 30년을 선고할 정도인 것을 보면 미국 사회가 리어리를 얼마나 위험하게 보고 있었는지 단적으로 알 수 있다. 1970년 리어리는 웨더맨이라는 단체의 도움을 받아 총격전 끝에 탈옥에 성공한다. 알제리아로 도피한 리어리는 스위스로 건너간다. 그러다가 1973년 아프가니스탄에서 체포되어 3년간 복역한다. 그리고 1996년 전립선암으로 파란만장한 삶을 마감한다. 사이키델릭 시대가 대미의 막을 내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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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사이키델릭 시대와 티모시 리어리(Timothy Le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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