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 일반

원폭투하자들은 양심의 가책을 받았을까

by rokea posted Jul 19,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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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86일 에놀라 게이호는 히로시마 상공에 원자폭탄을 투하한다. 그 결과 사망자 78천명, 실종자 1만명, 부상 37천명이라는 어마어마한 피해가 발생한다. 1번의 공격으로 입힌 피해로는 사상 최고의 기록일 것이며 이것은 깨어져서도 안 되는 기록이기도 하다.

 

당시 에놀라 게이호에 탑승했던 승무원은 12. 이 사람들은 원폭 투하후 도대체 어떤 마음으로 세상을 살아갔을까? 보통 사람이라면 사람을 하나 다치게 해도 죄책감에 시달리기 마련이다. 승무원들은 아무리 국가의 명령이었더라도 엄청난 사람을 죽게 하고 다치게 했다는 죄책감에 시달리지는 않았을까?

 

에놀라 게이 승무원들은 다 미쳤다

   

한때 에놀라 게이호의 기장이었던 폴 티베츠와 승무원들이 정신이상에 걸려 정신병동에 입원했다는 뜬금없는 소문이 돈 적이 있다. 이러한 소문들을 보통 도시전설(urban legend)라고 부르는데, 대개는 허위로 밝혀지곤 한다. 물론 이 소문도 허위였다.

 

도시전설은 일반 사람들의 기대감을 반영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다시 말하면 사람들은 에놀라 게이호의 승무원들이 엄청난 죄책감에 시달리리라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을 이 도시전설은 말해준다.

 

또한 모든 도시전설에 근거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이야기가 생겨날 최소한의 근거는 모든 도시전설이 갖고 있다. 티베츠와 관련된 도시전설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 도시전설이 생겨난 것은 티베츠가 아니라 히로시마 원폭투하에 에놀라 게이호와 함께 나섰던 또 다른 B29, 스트레이트 플러쉬호의 클로드 이덜리 기장이 원인이었다.

 

스트레이트 플러쉬는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을 투여할 때, 기상정찰 임무를 띠고 에놀라 게이와 함께 나섰던 B29기였다. 스트레이트 플러쉬는 히로시마 상공의 기상조건을 정찰하여, 원자폭탄을 투하할까의 여부를 결정하는 역할을 맡고 있었다. 스트레이트 플러쉬호가 ‘No'라고 하면 원폭투하는 취소되어 철수하도록 계획되어 있었다.

   

이 비행기의 기장 클로드 이덜리는 원폭투하후 엄청난 죄책감에 시달렸다. 자기의 결정이 무고한 사람들을 죽였다는 자책감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것이다. 자기가 거짓으로라도 원폭투하를 해서는 안되는 기상조건이라고 보고만 했어도 그 많은 무고한 사람들을 죽이지 않아도 되었다는 죄책감이었다. 이 결과 이덜리는 정신병원 신세를 지게 되었으며 훗날 반핵운동에 직접 나서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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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죄책감이란 전혀 없다

 

그렇다면 에놀라 게이의 승무원들의 경우는 어땠을까? 12명의 승무원 가운데 지금 생존해있는 사람은 없지만 이들은 생전에 여러 매체를 통하여 자신의 의견을 표명하곤 했다. 이러한 매체들을 통하여 이들의 생각을 충분히 엿볼 수 있다.


20058월 히로시마 원폭투하 60주년을 맞아 당시 생존해 있던 기장 티베츠, 항법사 커크, 보조 발사준비원 젭슨의 3명들이 기자들에 배포한 성명서에서 원폭의 사용은 반드시 필요했다. 우리에게 아무런 죄책감은 없다라고 말하고 있다.

 

기장 티베츠는 한 술 떠 떴다. 20053나에게 똑같은 상황이 주어 진다면, 나는 똑같은 일을 할 것이다라고 공적으로 밝혀 죄책감은 커녕 오히려 자기가 했던 일에 자부심까지 느끼고 있다는 인상을 주었다. 사실 티베츠의 손자는 할아버지가 지휘했던 부대해서 비행사로 근무하고 있기도 하다.

   

승무원들은 이러한 입장을 죽을 때까지 견지했다. 유일한 예외는 부기장이었던 루이스였다. 1978년 루이스는 1년간 심리치료를 받았다. 원폭투하로 전쟁을 빨리 끝내 수많은 미군을 구할 수 있었다는 자긍심과 원폭투하로 무고한 히로시마 시민을 엄청나게 죽였다는 죄책감에서 고뇌하고 있었던 것이다.

   

루이스의 심리치료를 담당했던 월러비 박사는 루이스의 치료 후 다른 승무원들은 어떠한 심리상태로 살아가고 있는가를 면접조사했다. 몇 명의 승무원들의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었다.

   

티베트 기장:원폭 투하를 결정한 것은 내가 아니다. 명령에 따랐을 뿐이다. 전쟁에서 개인을 생각해본 적도 없다. 나는 누구보다도 쉽게 잊을 수 있다. 원폭투하는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전쟁행위의 하나일 뿐이다.

 

페레비 폭격수: (에놀라 게이호에는 초보적인 컴퓨터가 장착되어 있어 그것을 조작했기 때문에) 자신이 원폭을 투하했는지, 컴퓨터가 했는지 잘 모르겠다

   

비저 레이다 담당: 지나간 일은 생각하지 않는 주의이다. 지나간 일을 생각하면 머리가 이상해진다. 나는 후회하지 않을 뿐 아니라, 양심의 가책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이렇게 살아 남은 것이다.

   

커크 항법사: 전쟁 행위는 정당화시킬 수밖에 없다. 누구나 싸울 때는 이기기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은 다 하는 것이다.

  

심리적인 적응은 결국 성격에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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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러비박사는 면접을 마친 후, 모든 승무원들이 마음속에는 가치의 대립이 있다고 말했다. 그것을 어떤 식으로라든 합리화하여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인지부조화의 해소와 합리화에 의하여 그들은 현실생활에 적응할 수 있었다. 인터뷰가 이루어지던 당시 그들 모두는 성공적인 삶을 살고 있었다, 기장 티베츠는 항공회사의 사장이었으며 레이저 담당였던 비저는 웨스팅하우스의 사장 자리를 맡고 있었다. 커크 항법사는 듀퐁의 판매부장으로 근무하고 있었고 페레비 폭격수는 부동산 중개업을 하다 은퇴한 상태였다.

   

그렇다면 의문이 하나 들 것이다. 다른 승무원들은 멀쩡했는데 왜 부기장 루이스만이 정신병원 신세를 져야 했을까? 월러비박사는 성격탓이라고 이야기한다. 루이스는 성격이 급하고 독선적이고 감정적이어서 심리적인 적응에 문제가 있었다는 것이다.

  

결국 양심의 가책을 받은 사람은 12명 가운데 1명이 되는 셈이다. 12명 가운데 1명.  많다면 많고 적다면 적은 수이지만 한가지 분명한 것은 사람들이 기대했던 것보다는 훨씬 적은 수가 양심의 가책을 받았을 뿐이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