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말이 통하지 않을까 – 오해의 심리학
가까운 사람일수록 말을 안 해도 다 알아줄 거라 믿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가장 가까운 사이에서 가장 깊은 오해가 생기곤 합니다.
"그건 그런 뜻이 아니었어."
"왜 그렇게밖에 이해하지 못해?"
"난 그런 식으로 말한 게 아니야."
이런 말들이 오가는 순간, 대화는 더 이상 대화가 아니게 됩니다.
우리는 서로의 말을 들었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전혀 다른 걸 듣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사람은 누구나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고 있다’고 믿는 경향이 있습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나이브 리얼리즘(naive realism)’,
즉 ‘순진한 현실주의’라고 부릅니다.
내가 본 것이 진실이고, 내가 느낀 것이 객관이라고 믿는 것이죠.
그래서 상대가 다르게 말하면, 틀렸다고 생각하거나
심하면 ‘고의로 왜곡한다’고까지 느끼게 됩니다.
또 하나, 우리는 자신이 말한 의도를 기준으로 기억하고,
상대는 자신이 들은 방식으로 판단합니다.
그 사이에 놓인 갭은 생각보다 큽니다.
예를 들어, 나는 "그건 네가 조금 더 신중했으면 좋았을 것 같아"라고
조심스럽게 말했지만,
상대는 "왜 자꾸 나한테만 뭐라 해!"라고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말이 통하지 않는 이유는, 말의 내용 때문이 아니라
그 말이 전해지는 방식과 해석되는 방식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우리는 듣고 싶은 것만 듣는 경향도 가지고 있습니다.
이는 심리학적으로는 ‘확증 편향(confirmation bias)’이라고 불리는 인지 오류입니다.
기분이 상한 상태에서 듣는 말은,
평소라면 지나쳤을 말조차 마음에 콕 박히게 만들죠.
그렇다면 해결책은 무엇일까요?
의외로 간단하지만 실천하기 어려운 방법입니다.
말을 주고받을 때, 내가 들은 것이 진짜 그 뜻이었는지
한 번쯤 되물어보는 겁니다.
“혹시 내가 잘못 이해했을 수도 있는데, 그 말은 이런 뜻이었어?”
이 한마디가 오해의 전선을 끊는 데 꽤 강력한 힘을 발휘합니다.
오해는 말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의 거리에서 시작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누구나 오해하고, 또 오해받으며 살아갑니다.
중요한 건, 그 오해를 풀고자 하는 의지와 마음가짐이겠지요.
다음 글에서는 우리가 왜 ‘나만 옳다’고 믿는가에 대해 조금 더 자세히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이 글은 제가 준비 중인 ‘오해와 갈등’에 대한 책 작업과도 연결되어 있습니다. 일상에서 마주치는 오해의 순간들을 함께 돌아보며, 그 안에 담긴 심리적 메커니즘을 풀어가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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