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화를 내지 않고는 살아갈 수가 없다. 마찬가지로 누군가가 나에게 화를 내는 상황과 전혀 마주치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다. 화를 잘 내는 사람은 감정적으로 미숙하다는 증거이기 때문에 되도록 화를 내지 않고 불만이 있더라도 속으로 삭이는 것이 성숙한 인간의 자세라고 여기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사회심리학에서는 화를 이런 식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가령 미국의 사회심리학자 Averill은 화를 “원시적인 반응이나 단순한 공격의 별칭이 아니다. 대인관계에서 행동을 조절하는 데에 소용이 되는 고도로 세련되고 사회적인 의미를 갖는 감정증후군”이라고 하며 인간관계에서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화에는 건설적인 것도 있다
또한 화를 낸다는 것이 인간관계에서 상당히 긍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연구도 많아 요즘은 “건설적 분노(constructive anger)"라는 개념이 대단히 주목을 받고 있을 정도이다.
하지만 효과적으로 화를 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적절하게 화를 낸다는 것은 사회적 스킬 가운데에서 가장 어려운 기술의 하나인 것이다. 따라서 아무 때나 내키는 대로 화를 냄으로써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 올 수는 없다. 모든 기술이 그렇듯이 화를 낸다는 스킬에도 지켜야 할 절차와 순서가 있고 또 금도도 있다. 이러한 것이 체득될 때 비로소 효과적으로 화를 낸다는 것이 가능해질 것이다.
이런 기술을 익히기 위해서는 우선 화에 대한 이해 전체를 높일 필요가 있다. 이번에는 사람들이 화를 내는 11가지 이유에 대해서 살펴본다.
지금 당신이 어떤 실수를 저질렀다. 그것을 계기로 누군가가 당신 앞에서 화를 내고 있다고 생각해보자. 그 사람이 친구라고 생각해도 좋고 애인이라 생각해도 좋다. 그 사람은 과연 왜 화를 내고 있는 것일까? Averill에 따르면 사람이 화를 내는 동기에는 다음과 같은 11가지가 있다. 이러한 동기가 단독, 혹은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사람은 화를 낸다고 한다.
화를 내는 11가지 이유
■ 혐오감의 전달
그 사람은 평소 당신이 마음에 안 들었다. 이번 실수를 계기로 화를 냄으로써 보통 때의 생각을 표현하고 있다
■ 단순한 앙갚음
그 사람은 당신이 저지른 실수로 자기가 당한 것을 앙갚음하고 싶은 것이다
■ 과거의 언동에의 앙갚음
그 사람은 지금의 실수만이 아니라 당신은 이미 잊어먹었을 수도 있는 과거의 언동에 불만이 있었다. 또한 당신과는 달리 그 사람은 그것을 가슴속에 품고 있었고, 그것이 이번 계기로 폭발한 것이다
■ 관계의 해소
그 사람은 이 실수를 계기로 당신과의 관계를 아예 끊고 싶은 것이다. 그것을 분노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 체면유지
그 사람은 자신은 그런 실수를 결코 하지 않을 뿐 아니라 자신은 당신보다 우월한 존재라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다. 이런 경우 당하면 자존심 상한다
■ 자신을 위한 행동의 통제
그 사람은 자기를 위하여 당신의 행동을 바꾸고 싶은 것이다. 당신은 이런 실수를 되풀이하는 한 자기에게도 나쁜 영향이 올 수밖에 없기 때문에 당신의 행동을 바꾸려는 것이다
■ 당신을 위한 행동의 통제
그 사람은 당신을 위해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해, 당신의 특정한 행동을 바꾸고 싶어 하는 것이다. 이런 실수를 거듭하면 당신이 사람되기 어렵다고 판단해 당신이 다시는 이런 실수를 저지르지 않도록 따끔하게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 개인적인 기대
그는 화내는 것으로써, 당신에게 어떠한 일을 시키고 싶었다
■ 관계강화
그는 당신과의 관계를 강하게 하고 싶은 것을 화를 내는 식으로 표현하고 있다
■ 책임회피
당신을 위해 해주고 싶은 것이 있었지만, 당신의 이번 실수로 하고 싶은 마음이 사라져, 그것으로부터 피하려는 것이다. 이런 실수를 저지르는 넘에게 더 이상 해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 울분의 토로
그는 이번 당신이 저지른 실수와는 상관없이 평소의 자신의 욕구불만이나 울분을 토로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당하는 입장으로서는 사실 제일 더럽다.
상대방이 화를 내는 이유에 따라 대처방법은 다르다
이처럼 사람이 화를 낸다는 얼핏 단순하게 보이는 행동에도 여러 가지 요인이 작용하고 있다. 따라서 상대방이 화를 낼 때는 저 사람이 우선 왜 화를 내는지를 따져보면서 거기에 대응할 필요가 있다.
가령 관계의 강화나 개인적인 기대 등으로 자기를 위해서 화를 내고 있는 것이라면 덩달아 화를 낼 필요는 없을 것이다. 잠자코 들어주는 것으로도 상대방의 화는 곧 풀릴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이번 내가 저지른 일시적인 실수로 화를 내고 있는 것이라면 진심어린 사과로 그 상황을 피해 갈 수 있다. 자신은 이미 잊어버린 과거의 언동이 문제가 되는 듯하면, 이번 기회를 호기로 삼아 대한 오해를 풀 수도 있다. 지금 화를 내는 것이 당신에 대한 혐오감을 표출하는 것이라면 자신을 왜 그렇게 싫어하는지를 따져보아야 할 것이다. 또한 상대방이 평소 자신의 욕구불만이나 울분을 토로하는 것이라고 생각되면, 오늘은 똥밟았다고 생각하면 그뿐이다.
가장 어리석고 유치한 행동은 상대방이 화를 낸다고 덩달아 화를 내는 것이다. 오는 말이 고와야 가는 말이 곱다고, 상대방이 화를 내고 있는 상황에서 이쪽에서도 고운 말이 갈리는 전혀 없다. 이러다보면 아무렇지도 않게 넘어갈 수 있는 상황이 꼬일 대로 꼬이기 마련이다. 결국 수습이 어려운 단계에까지 이르게 되어 관계에 심각한 장애가 오기 쉽다.
인간관계에서 화를 낸다는 기술만큼이나 상대방의 화를 받아들이는 기술도 대단히 어려운 것 가운데 하나이다. 효율적으로 화를 내는 기술을 몸에 익히고 싶으면 우선은 화를 받아들이는 기술을 습득하는 것이 먼저이다.
가장 강조하고 싶은 것은 상대방이 화를 낸다고 발끈해서 덩달아 화를 내는 것은 자기나 상대방 양쪽에 전혀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이다. 화를 내기 전에 상대방이 왜 화를 내는지 그 이유를 반드시 따져보아야 한다. 물론 사람이란 감정의 동물이라 이것이 말만큼 쉽지는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