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 시절 시험기간 동안에 영화를 보러 간 적이 있었던 사람들은 꽤 많을 것이다. 중간고사나 기말시험 기간에는 다른 때보다 학교가 일찍 끝나니 시간의 여유가 있는 것은 분명하다. 시험 준비를 완벽하게 해놓았다면 머리를 식힐 겸 영화를 보러 갈 수도 있다.
하지만 중간고사나 기말시험 기간 중에 극장가는 사람치고 시험 준비 철저하게 해놓은 경우를 못 보았다. 시험 준비라고는 전혀 해놓지 않았거나, 대충 해놓은 학생들이 시험기간 중에 영화 보러 가는 것이 보통이다.
미리 스스로의 발목을 잡아둔다
생각해보면 이상한 일이다. 제대로 된 학생이라면 빨리 집에 가서 시험 준비에 매달려야 하는 것이 상식이 아닐까? 도대체 무엇을 믿고 영화를 보면서 그 귀중한 시간을 낭비하는 것일까?
시험기간 중에 영화를 보는 식의 행동은 우연하게 일어나는 것이 결코 아니다. 본인은 의식 못할지 모르지만 이러한 행동은 나름대로의 전략에 기반을 둔 행동이다. 한마디로 말해 머리를 굴린 행동이라는 것이다. 사회심리학에서는 이러한 행동을 셀프 핸디캐핑(self-handicapping)이라고 부른다. 셀프 핸디캐핑이란 스스로에게 핸디캡, 즉 불리한 조건을 미리 마련해둔다는 의미이다. 스스로의 발목을 잡는 행동을 미리 해두는 것이다.
이러한 행동이 일어나는 이유는 시험 성적이 나빴을 때, 그 원인이 자기의 능력이 없어서인지, 아니면 영화를 보느라 시험 준비를 못해서인지 알 수 없도록 해두기 위해서이다. 시험 전날 영화를 보았다는 사실은 시험 준비가 소홀할 수밖에 없었다는 훌륭한 증거가 된다.
이렇게 해두면 성적이 나빠도, 적어도 머리가 나쁘다는 소리를 듣지 않을 수 있는 핑계거리를 확보해둔 셈이 된다. 시험결과가 신통치 않아도 머리는 좋은데 준비를 못해서 성적이 나빴을 뿐이라는 인상을 친구들에게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밤을 새는 식으로 최선을 다하고 성적이 나빴을 경우는 빠져 나갈 구멍이 없다. 본인의 능력이 시원치 않다는 게 그대로 드러나 버리기 때문이다. 이 때는 또 다른 전략적인 행동이 필요하다. 여기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에 이야기한다. 사람은 머리 나쁘다는 소리보다는 게으르다는 소리를 듣는 편을 오히려 좋아한다. 게으르다는 것이 머리 나쁘다는 것보다는 자존심에 덜 치명적이기 때문이다.
또한 영화를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의외로 시험 성적이 좋았을 때는 보통 때보다 더 높은 평가를 받을 수 있다. "공부도 하지를 않았는데, 좋은 성적을 올리다니, 걔는 천재인가보다"라는 식의 할증된 칭찬을 받을 수도 있는 것이다.
자존심이 센 사람은 자신있을 때, 약한 사람은 자신없을 때
셀프 핸디캐핑이란 시험에 자신이 없기 때문에 이루어지는 것일까?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 자존심이 높은 사람의 경우에는 오히려 시험에 자신이 있을 경우, 셀프 핸디캐핑을 하는 경향이 있다. “영화를 보면서 놀았는데도 저 성적이라니, 저 넘은 역시 대단하군”이라는 식의 할증된 평가를 받기 위해서이다.
자존심이 낮은 사람의 경우에는 반대로 시험에 자신이 없을 경우에 셀프 핸디캐핑을 한다. 핑계거리를 확보해두기 위해서이다. 시험을 앞두고 시험에 자신이 없는 데도 불구하고 딴 짓을 한 적이 있다면 본인은 자존심이 낮은 편이라고 생각해도 좋다.
시험 전날 영화를 보는 식의 행동 모두가 저절로 셀프 핸디캐핑이 되는 것은 물론 아니다. 셀프 핸디캐핑이 되기 위해서는 한 가지 조건을 반드시 충족시켜주어야 한다. 그것은 학교에 가서 전날 자기가 영화를 보았다는 것을 이야기하느냐의 여부이다.
남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면 그것은 셀프 핸디캐핑이 아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 누구도 그 학생이 영화를 보았다는 것을 아무도 모르니 불리한 조건이 될 수가 없다. 이런 학생은 진짜로 영화를 좋아했기 때문에 시험 전날 극장을 갔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남들 들어보라는 듯이 일부러 큰 소리로 "어제 영화 보았는데 되게 재미있더라'라고 떠들었다면 그것은 셀프 핸디캐핑이 된다. 물론 대개는 자기가 영화를 보았다는 것을 강조하기 마련이다. 사실 이 말 하려고 영화 본 것이다. 시험기간 중에 보는 영화가 더 재미있게 느껴지는 것은, 바로 이러한 목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시험 기간 중에 극장을 가는 것만이 셀프 핸디캐핑인 것은 아니다. 시험이 내일인데, 게임에 몰두해 있다든지, 무협소설을 읽는다든지 하는 것도 물론 훌륭한 셀프 핸디캐핑이다. 다음날 학교에 가서 “하루 종일 게임하느라 시험공부 하나도 못했네. 참 게임이란 게 뭔지”라든지 “어제 괜히 무협소설 들었다가 시험공부 하나도 못했네. 그 무협작가는 역시 대단해. 한번 잡으면 끝을 봐야 한다니까”라는 식의 말을 하려는 것이다..
셀프 핸디캐핑은 학생들만 하는 것은 아니다. 성인 역시 다양한 상황에서 다양한 셀프 핸디캐핑을 구사하고 있다. 중요한 일을 앞둔 전날 술을 마신다든지, 가능성이 전혀 없는 목표에 매달리는 식의 행동들이 대표적이다. 다음번에는 셀프 핸디캐핑을 다룬 재미있는 실험을 하나 살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