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험은 ‘약물 효과의 연구’라는 명목으로 실시되었다. 이 실험에 참가한 사람들은 우선 수열(數列)에 관한 20가지의 문제로 이루어진 테스트를 받아야 했다. 문제지는 두 가지가 있어 하나는 누구나 대답할 수 있는 문제들로 이루어졌다. 또 다른 하나는 정답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대단히 어려운 문제들로 구성되었다. 문제를 푸는 사람들은 선택지 가운데서 대충 하나씩 찍어나갈 수밖에 없었다.
시험이 끝나고 나서 얼마 후 참가자들 모두가 자신의 성적을 알게 되었다. 쉬운 문제를 푼 사람은 물론, 어려운 문제를 풀었던 사람들도 예상외로 성적이 대단히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성적이 높도록 일부러 채점을 했으니 모두가 좋은 성적을 거둔 것은 당연했다. 이 실험의 목적은 테스트에서 얼마나 좋은 점수를 기록하는지를 보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실험을 주재하는 사람은 성적을 알려준 후 “지금부터 아까 보았던 시험과 비슷한 시험을 다시 한 번 보아야 합니다. 그 전에 우선 약을 복용하셔야만 합니다. 이 실험은 여기에 놓인 약들이 두뇌 활동에 미치는 효과를 측정하는 것이 목적이니까요. 약에는 두 종류가 있어, 하나는 뇌를 자극해 지적 활동을 촉진하는 약이고, 또 다른 하나는 두뇌 활동에 지연을 주어 지적 작업을 방해하는 약입니다. 두 종류의 약 가운데 어느 것을 드셔도 무방합니다”라고 말했다.
대충 찍어 성적이 좋았던 사람의 선택은?
사실 이 실험의 목적은 참가자들이 어떠한 종류의 약을 선택하는지를 살펴보는 것이었다. 실험 결과를 보면, 어려운 문제를 풀었던 사람들은 지적 활동을 방해하는 약을 선택했다.
이 사람들은 앞에서는 어떻게 운이 좋아서 좋은 점수를 받았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다음번 시험에서도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다는 보장이 전혀 없다는 것 역시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따라서 그들은 지적 작업을 방해하는 약을 선택했고, 이렇게 함으로써 다음번 시험에서 성적이 나쁘더라도 핑계를 댈 수 있는 재료를 확보한 셈이었다.
시험 성적이 나쁘더라도 성적이 나쁜 것은 약 때문이라고 주장할 수 있어, 지난번 테스트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는 ‘과거의 영광’은 손상받지 않는다. 자기평가를 그대로 유지할 수 있다는 말이다. 이뿐 아니라 만약 다음번 시험에서 성적이 좋기라도 하면 머리를 나쁘게 하는 약조차도 효과가 없는 최우수 두뇌의 소유자라는 인상을 줄 수도 있다.
이처럼 아무렇지도 않아 보이는 사람들의 행동 이면에는 복잡한 전략이 숨어 있다. 사람의 행동, 겉으로는 대수롭지 않게 보일지 몰라도 그러한 행동이 일어나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