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스트 '늘 사랑을 확인하는 사람들'의 해설입니다.
과거에는 늘 자기에게 듣기 좋은 말만 해주고 또 좋아한다는 말을 입에 달고 있던 사람이 요즘 들어와서는 반응이 영 신통치 않다. 좋아한다는 말을 자주 하지 않을 뿐 아니라 이쪽에서 “날 좋아하느냐?”고 물어도 “응”이라는 대답으로 건성건성 넘어갈 뿐이다. 상대방이 이제는 자기를 더 이상 좋아하는 것 같지 않으니 헤어져야 할까?
아이덴티티가 확립되어 있지 않은 사람들의 사랑
이런 고민을 하는 여성들 대단히 많다. 여성 뿐 아니라 남성에도 이처럼 상대가 자기를 좋아하는지 여부를 늘 확인하지 않으면 불안에 빠지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이러한 불안에 자주 빠지는 사람들의 경우 문제가 있는 것은 상대가 아니라 자기이기 쉽다. 이러한 불안은 자기가 스스로 만든 것이기 때문이다.
상대방이 그런 식의 반응을 보여주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누구라도 시도 때도 없이 칭찬받기만을 바라고 일방적으로 좋아해주기만을 바라고 있는 상대에게 무한정 좋은 낯을 할 수는 없다.
사실 상대방 상대가 좋아한다는 말을 입에 달고 있던 것처럼 생각되는 것도 이쪽에서 좋아하느냐고 자꾸 확인해보았기 때문이다. 누구나 처음에야 이런 질문을 받으면 사랑한다는 의사를 적극적으로 표시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것도 하루 이틀이지 이런 질문을 시도 때도 없이 계속 받다 보면 지겨워지는 게 인지상정이다.
왜 이러한 사람들은 상대방의 자기를 사랑하고 있는지 늘 확인하려들까? 그리고 상대가 적극적으로 사랑하고 있다는 말을 해주지 않으면 왜 불안에 빠지는 것일까?
이것은 이러한 타입의 사람들이 자기 아이덴티티가 제대로 확립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자기 아이덴티티란 미국의 심리학자 에릭슨이 제창한 개념으로 자기정체성, 혹은 자기동일성으로 번역된다. 자기정체성이란 나는 과연 누구인가, 나를 나답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에 관한 일관되고 연속적인 견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자기정체성은 청년기에 형성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정체성이 없으면 친밀성도 없다
정체성이 확립되지 못하면서 성년 전기에 반드시 익혀두어야 할 친밀성을 제대로 익히지 못한다. 에릭슨은 친밀성을 자신의 정체성과 다른 사람의 정체성을 융합시키는 능력이라고 생각했다. 따라서 양보와 배려를 바탕으로 자기와 다른 사람을 존중하는 형태로 친밀성은 표시되기 마련이다.
성년전기에는 다른 사람과의 친밀하게 지내는 것을 익혀, 독립된 존재로 사회생활을 영위해나가야 한다. 에릭슨은 청년기에 정체성을 확립한 사람만이 진정한 의미의 친밀성을 익힐 수 있다고 보았다. 정체성을 확립하지 못한 사람은 자기 자신에 대하여 자신감을 갖기 어려워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친밀성을 형성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이다. 결국 자기정체성이 제대로 확립되지 못한 사람은 고립되거나 자기 자신에게만 몰두하게 된다.
자기정체성이 확립돼있지 않은 단계에서 사랑을 하는 사람은 물론 많다. 그리고 이러한 단계에서의 사랑에는 앞에서 말한 현상이 나타나기 쉽다. 일본의 심리학자 오노(大野)는 이러한 사랑을 “자기정체성을 위한 사랑”이라 부르며 이러한 사랑의 특징을 다음과 같은 5가지로 정리하고 있다.
자기정체성을 위한 사랑의 5가지 특징
(1) 상대로부터 칭찬이나 찬사를 받기만을 바란다. 자신이 상대에게 좋아한다든지 멋있다는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가 자기를 좋아한다거나 멋있다고 말해주기만을 원하는 것이다. 이러다 보면 물질적, 심리적으로 요구만 앞서는 연애가 되기 마련이다. 이러한 사랑이 오래 갈 수는 없다.
(2) 항상 상대의 자기에 대한 평가에만 신경이 쓰인다. 틈만 있으면 “나 어떻게 생각해?”, “나 좋아해?”라고 물어보면서 상대방이 자기에게 호의적인 감정을 갖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려 든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불안해진다. 자기의 정체성을 내가 아니라 상대에게 구하고 있기 때문에 이런 현상이 빚어진다.
(3) 교제가 깊어져갈수록 자아를 상실해가는 것이 아닐까 하는 불안감에 사로잡힌다. 자신의 아이덴티티가 자신이 아니라 상대의 평가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이런 사람들은 관계가 깊어질수록 자신이 매몰되어가지 않을까 하는 불안에 사로잡힐 수밖에 없다.
(4) 상대의 일거수일투족으로부터 눈을 떼지 못한다. 상대가 자기를 늘 칭찬해주거나 달콤한 말을 해주지 않으면 자신의 아이덴티티가 위험해지기 때문이다. 상대가 덤덤하거나 퉁명스러운 반응을 보여주면 “저 사람이 나를 싫어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에 불안해진다. 이러한 까닭에 연애관계가 서로 감시하는 관계로 변질돼, 상대도 부담을 느끼게 된다.
(5) 결국 관계가 오래 가지 못한다. 상대가 자신을 비추어주는 거울로서의 기능을 하지 못하고, 상대 자신이 아니라 “상대의 눈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최대의 관심사가 되고 만다. 자신에 관한 생각으로 머리속이 가득 차 버려, 상대에 배려할 여유가 없다. 이러다보면 관계는 깨진다.
이러한 “자기 아이덴티티를 위한 연애” 때문에 자기정체성이 아직 확립되있지 않은 10대, 20대 초반의 연애가 오래 지속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문제는 독립된 존재이어야 할 성인이면서도 이러한 단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경우이다.
지금은 자기정체성을 위한 결혼도 많다
지금은 청년기가 길어지고, 경제적, 사회적으로 독립하는 시기가 늦어지면서 나이가 들어서도 자기정체성을 확립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이러다 보니 자기정체성을 제대로 확립되어있지 않은 상태에서 연애나 결혼을 하는 사람들이 많을 수밖에 없다.
진정한 친밀성이란 나를 상대에게 나누어 주는 것이다. 하지만 자기정체성이 확립되어있지 않은 사람은 나누어주거나 함께 공유할 자아가 없다. 내가 없는 데 나누어줄 내가 있을 까닭이 없는 것이다. 친밀성을 제대로 익히지 못한 사람들의 연애나 결혼은 이러한 이유로 깨지기 쉬운 것이다.
나에 대한 사랑을 확인하지 않으면 불안한 사람들은 내가 상대에게 나누어 줄 수 있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를 먼저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다. 만약 나누어줄 수 있는 것이 없다면 왜 없을까를 곰곰히 따져 볼 필요가 있다. 또한 사랑이란 신뢰와 믿음이 바탕이 되어야 오래 가는 법이다. 상대방의 반응 하나하나에 신경을 쓰다보면 이쪽이나 저쪽이나 다 피곤해진다. 그런 식의 사랑은 아니 하는 것만도 못할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