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사람이나 상황이 요구하는 대로 자유자재로 변신할 수 있는 사람이 인간관계에서 상당히 유리한 것은 사실이다. 사회심리학의 연구 결과를 보자면 상황에 따라 자기를 맞출 수 있는 카멜레온형 인간이 사회적 적응도가 높았다. 그것은 현대사회가 우리에게 카멜레온형 인간이 되기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내가 카멜레온형 인간인지 아닌지를 결정하는 개념에 자기모니터링이란 것이 있다. 자기모니터링 이론은 스나이더 (M. Snyder)가 제창한 이론으로 인간의 사회적 행동을 잘 설명허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자기 모니터링이란 사람과 마주하는 대인 상황에서 자신이 행하는 자기제시나 감정 표출을 스스로 주의 깊게 관찰하면서 그것을 조정하고 통제해나가는 것이다. 사람은 다른 사람과 마주한 상황에서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행동하거나 감정을 그대로 드러낼 수는 없다. 상대방에 대한 배려 없이는 사회생활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물론 친밀한 관계라면야 자기를 꾸밈없이 드러낼 수 있다. 하지만 사람이 항상 친한 사람만 만나면서 살아갈 수는 없다. 자기가 싫어하는 사람도 만나고 상대하기 거북한 사람도 만나야 하는 것이 바로 우리의 인간관계이다.
따라서 대개의 대인 상황에서는 상대방의 반응을 살펴가며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의 표현 수위를 조절한다든지 감정 표현의 정도를 조정해갈 수밖에 없다. 이러려면 상대방을 잘 관찰하여 그 뜻을 헤아리면서 자기의 행동을 조절해나가야 한다. 이처럼 상대방의 반응을 살펴가면서, 자신의 행동을 점검하여, 상대방에 대응해나가는 것이 자기 모니터링이다.
첫 대면이라면 자기 모니터링은 특히 활발하게 일어난다. 이 상황에서 사용할 수 있는 기존의 정보가 없기 때문이다. 상대방의 행동으로부터 정보를 수집하고, 거기에 의거해서 자기의 행동을 바꾸어가면서 상대방의 반응에 맞추어나간다. 물론 상대방도 다를 바 없다. 이러한 자기 모니터링의 결과, 처음에는 아귀가 맞지 않는 듯이 보이던 두 사람의 대화도 시간에 지나감에 따라 제자리를 찾아간다.
어느 정도 자기 모니터링을 하는지는 사람에 따라 상당한 차이가 있다. 자기 모니터링 경향이 높은 사람(이하 고SM)은 자신이 지금 하는 행동이 자기가 마주한 상황에 적절한지 여부에 항상 관심을 가진다. 따라서 그 상황에서 다른 사람이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주의 깊게 관찰한다.
그리고 그것을 지침으로 삼아 자신의 행동을 조정해간다. 고SM은 “이 상황은 내게 어떠한 인간이 되기를 요구할까”, 어떻게 행동하면 그러한 인간처럼 보일까”, “어떻게 하면 이 자리에 가장 잘 맞는 사람으로 비추어질 수 있을까” 등을 스스로에게 물어가면서 그 해답을 구한다. 그 결과, 마주한 상황에서 얻은 세세한 정보를 기초로 하여 그 상황에 적절하다고 생각되는 행동을 선택해간다.
고SM은 상황이 변하면 행동도 거기에 맞추어 변화시킨다. 고SM은 정보와 인상 관리 스킬을 활용하여 자신의 이미지를 주위 상황에 맞추어간다. 즉, 자신의 생각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그 상황에 적절한 자기의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데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말을 하고, 또 행동을 한다.
그렇다고 해서 고SM을 집단에 순응하기 쉬운 사람이라고 단정해버리는 것은 잘못이다. 그 상황에 맞는 행동을 취하기 때문에 대인관계에 민감하지만, 동조하는 것이 그 상황에 적합할 때만 동조한다. 마주한 상황의 분위기가 자율성을 요구한다고 생각되면 고SM은 주위에 동조하지 않고, 자율적으로 행동한다.
간단히 말해, 고SM은 자유자재로 변신할 수 있는 능력을 지녀 그 상황에 딱 맞는 유형의 인간형을 연출해낼 수 있는 사람이다. 이들은 회식에서는 누구보다도 밝고 즐겁게 처신하여 주위 사람을 즐겁게 한다. 하지만 그 이튿날의 회의석상에서는 누구보다도 성실한 모습으로 토론에 임한다. 아이들에게는 좋은 아빠이자, 부인에게는 자상한 남편이다. 하지만 바깥의 숨겨둔 애인에게는 누구보다도 정열적인 연인으로 변신할 수 있고, 또 변신하는 것이 고SM의 전형적인 특징이다.
자기 모니터링 경향이 낮은 사람(이하 저SM)은 고SM과는 정반대로 변신에 재주라곤 없다. 그들은 어느 상황에서나 똑같은 자기 모습을 보여주는 사람이다. 이들은 다른 사람의 행동이나 말 등의 외부적인 단서에 대한 관심이 낮다. 그 대신에 자신의 내적인 감정 상태나 태도에 따라 자신의 행동을 결정한다. 저SM에게 상황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 그에게 유일하게 중요한 것은 신조 있게 행동하는 것이다.
저SM은 처음 마주치는 상황에서도 “어떻게 하면 이 상황에서 평소의 자기 자신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을까?”라고 자문하면서 그 해답을 구해간다. 상황에 따른 변신보다는 자기다운 자기 모습을 보여주는 데 노력한다. 이 때문에 대인 상황에서도 상대방의 반응보다는 비교적 안정된 자기의 내적 특성에 의거한 정보를 이용하는 경우가 많다. 그 결과 상황이 바뀌어도 행동에 일관성이 유지될 수 있다.
고SM과 저SM의 결정적 차이는 행동의 일관성에 있다. 고SM은 주위 상황에 맞추어 자기 자신을 늘 변화시켜가는 카멜레온형 인간이다. 상황이 요구하는 대로 자기를 맞추어나간다. 결국 고SM에게는 수많은 자기가 있고, 또 그 많은 자기를 훌륭하게 연출해낼 수 있는 재주를 지녔다고 볼 수 있다.
반면, 저SM에게 자기는 하나뿐이다. 자기가 하나뿐이다 보니 어떠한 상황에서도 일관성을 유지할 수 있다. 저SM은 복수의 자기를 갖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지만, 만일 어쩔 수 없이 복수의 자기를 연출해야만 하는 상황이 닥치더라도 제대로 그 역할을 소화해내지 못한다. 이렇게 본다면 ‘행동의 일관성’ 자체에 개인차가 있어 거기에 자기 모니터링이 관계할 가능성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