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심리학에는 사람들이 친밀하게 되기까지의 과정을 단계로 나누어 각 단계에는 어떠한 심리적인 과정이 진행되고 있는가를 분석한 연구들이 많이 있다. 결혼만큼 친밀한 인간관계가 있을 수 없으니 결혼도 예외가 될 수는 없다. 결혼에 이르게 되는 과정을 분석한 연구들이 많다는 이야기이다. 이러한 연구들을 “연애단계설”에 관한 연구라고 부른다.
사람은 이성과 처음 만나 어떠한 과정을 거쳐 결혼에 골인하게 되는 것일까? 미국의 사회심리학자 머스타인(Murstein, B. J.)은 사람들은 다음과 같은 3단계의 과정을 거쳐 결혼에 이르게 된다고 한다. 그의 이론을 보통 SVR(Stimulus-Value-Role)이론이라고 부른다.
우선 결혼 후보자와 첫 만남의 단계가 있다. 이 단계에서는 상대방의 겉모습, 음성, 행동 등에 매력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느낄 수 없다면 연애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 다른 사람들로부터 들은 상대방의 평판도 물론 중요하다. 이 단계에서는 상대방으로 받는 자극(Stimulus)이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먼스타인은 이 단계를 S단계라고 부르고 있다.
S단계를 넘어 본격적인 교제가 시작되면 둘이서 함께 행동할 기회가 많아진다. 따라서 교제가 원활하게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서로의 생각이라든지 가치관, 혹은 태도가 유사해야 한다. 태도나 기호가 유사하지 않으면 삐걱거리기 마련이다.
먹는 것 하나만 봐도 그렇다. 식성이 180도 달라서는 문제가 생기기 쉽다. 어느 한 쪽이 희생해서 상대방이 고르는 것을 억지로 먹는 것도 한두번이지, 이게 무한정 갈 수는 없다. 먹는 것도 이럴 진데 다른 영역에서의 기호나 생각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반면 관심이나 흥미, 태도가 비슷하면 함께 즐겁게 보낼 수 있는 시간이 많아질 뿐 아니라 싸움이나 말다툼을 할 재료 자체가 적어지는 것이다.
가치관이 다르면 결혼까지 못간다
이 단계에서는 무엇보다도 가치관이 비슷할 필요가 있다. “합의적 타당성” 때문이다. 우리들의 일상생활에서는 무엇이 옳고 그른가를 판단하기가 쉽지 않다. 절대적 기준이 없기 때문이다. 가령 안락사같은 문제만 하더라도 여기에는 정답이 없다. 찬성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고, 반대하는 사람도 있기 마련이다. 사람들은 가치관에 따라 다 다르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회적인 판단이나 행동이 옳다는 것을 확인하는 방법은 다른 사람이 “옳다”고 동의해주느냐 여부이다. 많은 사람이 동의해주면 그것은 옳은 것이고 아무도 찬성해주지 않으면 그것은 그른 것이 된다. 이처럼 사회적 판단이란 어떤 절대적 기준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동의 정도에 달려있는 것이다. 이러한 까닭에 사회적 판단의 옳고 그름을 사회심리학에서는 합의적 타당성이라고 부르고 있다.
두 사람의 가치관이 비슷하면 상대의 의견이나 태도에 동의해주기 쉽다. 서로가 상대방의 판단이 옳다는 것을 보증해주기 때문에 두 사람 사이에 갈등이 생겨날 여지가 극히 작다. 이거 서로 다르다고 생각해보라. 만나면 싸우기 바쁠 것이다. 가치관이 다르면 연애가 진전되기 어려운 것이다. 교제가 진전된 단계에서는 가치관(Value)이 중요하다는 의미로 먼스타인은 이 단계를 V단계라 부르고 있다
교제의 최종 단계에 이르면 가치관이 비슷하다는 것 이상의 무엇이 필요해진다. 그것이 바로 역할분담이다. 이 단계에서는 서로가 역할을 분담해서 행동할 필요가 있다. 두 사람이 같은 역할에 충실하면 그 연애는 깨진다. 한 사람이 리드하면 상대방은 따라가 주어야 하고, 한 쪽이 어거지를 피우면 그것을 받아주기도 해야 한다. 어리광을 부리면 한 쪽은 어리광을 받아 주는 역할을 맡아 주어야 한다. 둘 다 어리광부리는 것만 고집하다 보면 더 이상의 진전이 어렵다.
이처럼 교제의 마지막 단계에서는 역할을 서로 나누어 맡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이런 까닭에 먼스타인은 교제의 최종단계를 R(Role)단계라 부르고 있다.
이러한 SVR 단계를 넘어서면 결혼으로 골인하게 된다. SVR의 각 단계에는 양자의 관계를 방해하는 요소들이 수없이 많이 있다. 결정적인 외부의 방해가 이루어지는 것은 V에서 R로 넘어갈 때이다. 이 단계에서는 부모나 친지의 방해가 있기 쉽고, 또 제 3자에 의한 비밀의 폭로가 이루어지기 쉽기 때문이다. 결국 연애에도 미묘한 과정이 있어 거기에 심리적으로 슬기롭게 대응해나갈 필요가 있다는 것을 SVR이론은 말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