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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매우 슬픈 익살이다(Life is a very sad piece of buffoonery.)"  이 말은 루이지 피란델로의 예술론이지만 그의 인생론이기도 했다. 1934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루이지 피란델로(Luigi Pirandello)가 이렇게 말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그의 처 안토니에타( Antonietta Portulano)라는 존재가 있었다.

 

피란델로의 고민의 배후에는 아내가 있었다

 

피란델로의 작품 가운데에는 인간존재의 이중성, 광기 등 정신의 위기를 주제로 한 것들이 많다. 그는 자기의 이중성에 대해 상당히 고민했던 작가이다. 그는 자신이 생각하는 자기의 모습과 다른 사람이 자기에 대해 품고 있는 이미지가 분열되어 있다는 점을 평생 동안 고민했다.


이러한 고민은 처 안토니에타(Antonietta Portulano)로부터 비롯되었다. 그녀의 존재가 없었다면 루이지 피란델로는 이런 문제의식을 갖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우리가 지금 기억하는 루이지 피란델로라는 존재도 없었을지도 모른다.

 

피란델로는 1867년 이탈리아의 시칠리아섬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부유한 유황 광산주로 아내가 죽자 혼자서 피란델로를 키웠다. 아들이 가업을 잇기를 원했으나 피란델로는 사업에는 관심이 전혀 없었다. 그 대신 문학에 재능을 보여 문학가의 길을 걷기로 한다.


1885년 로마대학에 입학했지만 교수와의 충돌로 독일의 본 대학으로 옮긴다. 본 대학에서는 언어학을 전공하여 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탈리아로 돌아온 피란델로는 본격적으로 문학의 길을 걷기로 작정한다.

 

189427세의 피란델로는 한 번도 만나본 적이 없는 안토니에타와 결혼을 하게 된다. 당시의 관습에 따라 아버지의 뜻에 따른 결혼이었다. 신부를 포함한 모든 것을 부모가 준비하면 신랑은 그냥 따라가기만 하면 되는 것이 당시의 관습이었다. 안토니에타는 피란델로의 아버지의 동업자의 딸로 대대로 내려오는 자산가 집안의 후손이었다.

 

그녀는 결혼할 때 엄청난 지참금을 갖고와 안그래도 부유한 피란델로는 돈에 전혀 구애받지 않고 창작생활에 전념할 수 있었다. 안토니에타는 수녀원에서 교육을 받은 조신한 여성으로 한 가지만 빼놓고는 누가 봐도 부러워 할 수밖에 없는 결혼이었다. 아쉬운 점이라면 안토니에타에게 어머니가 없었다는 점인데 안토니에타의 어머니는 그녀를 낳다가 세상을 떠났다.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게 된 사연에는 안토니에타의 훗날을 암시하는 듯한 구석이 있었다. 하지만 당시에는 누구도 그것을 대단하게 여긴 것 같지는 않았다. 당시로 본다면 아기를 낳다가 산모가 사망하는 일은 드문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안토니에타의 경우에는 분명히 불길한 구석이 있었다. 아버지의 광기 어린 질투가 의사가 출산을 지켜보는 것을 막았기 때문에 어머니가 사망했던 것. 이때 보여준 아버지의 광기어린 질투는 피란델로에게 닥칠 훗날의 불행을 예고하고 있었다.

 

이런 점에도 불구하고 피란델로의 결혼생활은 무난했다. 아무런 어려움 없이 젊은 부부는 적어도 세 아이를 낳을 때까지는 행복한 결혼생활을 보낼 수 있었다. 피란델로는 로마에서 시 창작에 몰두했다. 생활에 여유가 있어서인지 창작에 대한 치열함은 없었으나 그의 시집은 무난하다는 평가를 받았고 피란델로도 거기에 만족하면서 여유있는 생활을 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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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수로 풍비박산난 피란델로의 인생

 

1903년의 어느 날 갑자기 불행의 파도가 피란델로를 덮쳤다. 피란델로와 가족들의 삶을 근저로부터 뒤흔드는 비극적인 사건이 일어났던 것. 피란델로의 아버지가 운영하던 유황광산이 홍수 때문에 파산해버렸다.


광산의 파산으로 피란델로의 아버지의 재산 뿐 아니라 자신의 결혼지참금을 대부분 광산에 투자하고 있었던 안토니에타도 막대한 손해를 입었다. 안토니에타는 광산의 파산을 알려주는 편지를 읽고 나서 너무나 충격을 받아 긴장증이라는 정신이상 상태가 되었다. 곧 그녀는 심리상태가 완전히 붕괴되면서 피해망상증에 걸렸다.

 

집안이 완전히 몰락하는 판에 피란델로라고 예외일 수는 없었다. 애초에 그는 자살밖에 길이 없다고 생각했다. 머리 속은 자살하려는 마음 뿐이었으나 곧 마음을 고쳐먹었다. 그리고 집안을 살릴 수 있는 가능한 한 모든 일을 하려고 했다.


지금까지의 여유있는 생활과는 작별을 고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로마대학에서 교편을 잡아 생계를 꾸려가는 한편 창작에도 적극적으로 매달렸다. 그 결과 경제적으로 가장 곤란했던 이 시기에 고 마티아 파스칼과 같은 대표적 작품들을 탄생시킬 수 있었다. 역경이 닥쳐야 비로소 빛을 발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루이지 피란델로야말로 바로 그러한 사람이었다.

 

경제적 어려움보다 그를 더 힘들게 만드는 것은 안토니에타였다. 안토니에타의 광기는 남편에 대한 집요한 질투라는 형태로 나타났다. 그녀는 피란델로의 일거수일투족을 조롱하고 비난했다.


그의 가정은 지옥 그 자체였다. 그녀는 너무나 폭력적이라 시설에 수용해야 했지만 피란델로는 자신이 직접 돌보기로 작정했다. 사설수용소에 보내는 것은 경제적으로 감당하기 어렵기도 했지만 피란델로는 안토니에타와 헤어지기 싫었기 때문에 스스로 돌보기로 작정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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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16년간 피란델로의 가정은 말 그대로 지옥이었다. 안토니에타는 피란델로 뿐만 아니라 세 자녀도 괴롭혔다. 딸은 너무나 고통스러워 자살을 기도하기도 했다. 다행히 권총이 불량했기 때문에 격발이 되지 않아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이 사건 하나만 보더라도 피란델로의 가족들이 어떤 고통을 겪고 살았는지 미루어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16년 동안 정신병 환자인 아내와 살면서 피란델로는 언제나 가면을 뒤집어쓰고 살 수밖에 없었다. 피란델로는 아내가 요구하는 또 하나의 자신을 언제나 준비해두어야만 했다. 현실과 광기의 세계, 현실과 환상의 세계가 그의 일상생활에는 뒤섞여 있었다. 그는 늘 아내의 곁에 있으면서 그녀의 비난과 분노를 가라앉히려 했지만, 그것은 언제나 무위로 끝나기 마련이었다. 그의 고통은 아내가 요양원에 수용된 뒤에야 끝이 날 수 있었다.

 

피란델로는 16년간을 지옥 속에서 살았으나 그 기간이 그에게는 깨달음의 기간이기도 했다. 가면을 쓰고 있는 자신은 거짓된 자신이고 가면의 뒤편에는 진정한 자기가 있다는 확신이 얼마나 쓸모없는지를 고민 끝에 깨달았다, 그리고 그는 그것을 문학적 주제로 삼았다. 이러한 처참한 경험이 그의 작품세계에 반영되지 않는다면 그것이 오히려 이상했을 것이다. 피란델로는 광기와 환상, 고독을 그의 희곡들에 아낌없이 그려내기 시작했다.

 

그의 연극들이 재정적으로도 성공하면서 1919년 그는 겨우 안토니에타를 사설 요양소에 입원시킬 수 있었다. 안토니에타는 광적인 질투를 드러내며 그를 괴롭혔지만 피란델로는 늘 그녀를 사랑했다. 그녀를 요양소로 보내고나서도 그는 그녀와의 헤어짐으로 괴로워했고 자기가 돌볼 수 있다고 생각해 그녀를 집으로 데려오려했지만 무위로 끝났다.

 

너무나 지옥같고 고통스러웠던 17년간이었지만 만약 이 기간이 없었다면 피란델로는 문학가로서 성공을 거두지 못했을 지도 모른다. 문학가로서의 피란델로에게 안토니에타는 하늘이 맺어준 연분이었던 셈이다.


결국  인생은 매우 슬픈 익살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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