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터넷에서 자주 떠도는 아인슈타인 명언이 있습니다.
“기술이 인간의 상호작용을 능가하는 날이 올까 두렵다.
그때 세상은 바보들의 세대가 될 것이다.”
놀라운 점은, 이 강렬한 문장이 아인슈타인이 실제로 한 말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더 흥미로운 지점은 바로 여기서 시작됩니다. 왜 ‘아인슈타인’이라는 이름만 붙으면 이렇게 설득력이 생길까? 그리고 왜 지금 이 말이 다시 회자되는가?
1. 아인슈타인이 실제로 한 말은 아니지만…
명언 검증 사이트와 전기 연구자들은 이 문장을 모두 가짜 명언으로 분류합니다. 출처도 불분명하고, 아인슈타인의 글·강연·인터뷰 어디에도 나오지 않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 문장을 들으면 “역시 천재는 미래를 내다봤군” 하고 믿어버리곤 합니다. 이것은 하나의 심리학적 현상입니다.
- 권위에 기대는 심리(Authority Bias)
- 유명인의 말이면 더 진실처럼 느껴짐
- 강력한 메시지를 ‘천재의 혜안’으로 포장하고 싶은 욕구
즉, 이 문장이 힘을 얻는 이유는 아인슈타인이 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그의 입을 빌리고 싶어 하기 때문입니다.
2. 그런데 왜 지금 이 문장이 다시 유행하는가?
이유는 명확합니다. AI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렸기 때문입니다.
- AI가 그림을 그리고
- AI가 뉴스를 쓰고
- AI가 음악을 만들고
- AI가 시험을 치르고
- AI가 인간의 의사결정까지 대체하는 상황에서
사람들은 ‘기술이 인간을 능가할까?’라는 질문을 본격적으로 던지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이 명언은 우리 시대의 불안과 공포를 정확히 건드렸기 때문에 다시 소환된 것입니다.
3. AI가 인간적 상호작용을 대체할까?
이 질문은 단순한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심리학의 문제입니다.
AI는 이미 ‘도구’를 넘어 ‘관계’가 되고 있다
- AI 연애
- AI 친구
- AI 멘토
- AI 테라피
- AI와의 감정적 유대(Emotional Bonding)
AI가 인간적 상호작용을 보완하는 수준을 넘어 인간의 감정적 결핍을 채우는 역할까지 하고 있습니다. 이건 아인슈타인의 우려가 맞았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우리가 인간적 관계를 점점 더 피로하고 불편한 것으로 느끼기 때문입니다. 즉, 기술이 인간성을 위협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 관계의 피로가 기술을 매력적으로 만든 것입니다.
4. 기술이 인간을 ‘바보’로 만들까?
이 질문은 오히려 더 역설적입니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우리는 더 많은 선택권을 갖지만 동시에 더 많은 판단을 기술에 위임합니다.
- 길 찾기 = 내비게이션
- 기억 = 스마트폰
- 계산 = 앱
- 정보 탐색 = 검색엔진
- 창작 = AI
- 결정 = 추천 알고리즘
‘바보가 된다’는 말은 실제로 이렇게 번역할 수 있습니다.
“인간이 스스로 사고할 필요가 줄어드는 시대.”
즉, 문제는 기술 그 자체가 아니라 사유의 위탁(outsourcing thinking)입니다.
5. 그렇다면 정말 기술이 인간을 위협할까?
둘 중 하나가 아니라 둘 다 가능합니다.
기술이 인간성을 대체할 수 있다
→ 인간관계 피로 + 기술의 매끄러움이 결합
→ AI 관계가 ‘편안한 관계’로 인식됨
그러나 인간적 상호작용은 대체가 어렵다
→ 공감, 뉘앙스, 상호 희생, 관계의 긴장
→ AI는 모방할 수 있지만 경험할 수는 없음
그리고 여기에 중요한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기술보다 인간성을 더 빨리 잃는 건 기술의 발전이 아니라
우리가 인간적 관계를 포기하는 방식이다.
6. 결론: 가짜 명언이지만, 진짜 메시지
아인슈타인이 하지 않았지만 이 문장은 지금 시대에 묘하게 맞아떨어집니다. 왜냐하면 이 문장이 말하고 있는 ‘두려움’이 바로 우리가 품고 있는 두려움이기 때문입니다.
- 인간적 관계는 점점 더 피곤해지고
- 기술은 점점 더 친절해지고
- 우리는 사유의 많은 부분을 기술에 맡기고
- 감정의 일부마저 기술에 넘기고 있다
따라서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은 기술이 아니라,
기술에게 우리 사고와 관계를 넘겨버리는 태도 그 자체입니다.
기술이 인간적 상호작용을 능가하는 날이 오는 것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인간적 상호작용을 스스로 포기하는 날이 더 두려운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