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 사회에서 사면(赦免)은 종종 오해된다. 법률적으로 사면은 죄가 없음을 선언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확정된 유죄 판결에 대한 형벌의 집행을 면제하거나 기록을 일부 소멸시키는 조치에 불과하다. 말하자면 사면은 “무죄 선언”이 아니라 “국가 권력이 내려주는 특별한 은혜”다.
그러나 정치적 이해관계가 걸려 있는 사안에서는 이 법적 의미가 왜곡되곤 한다. 특정 인물의 사면을 두고, 지지자들은 그것을 ‘무죄가 입증된 것’ 처럼 받아들이기도 한다. 법률적 절차와 사실 관계를 넘어, 사면은 곧 ‘우리 편의 억울함이 풀렸다’는 상징적 사건으로 해석된다.
이 현상은 사회심리학적으로 중요한 함의를 갖는다. 첫째, 이는 신념 지속 효과(belief perseverance)의 한 사례다. 이미 “우리 편은 억울하다”는 믿음을 가진 사람들은, 그 믿음과 어긋나는 법원의 판결을 인정하지 않는다. 대신 사면이라는 제도를 “무죄 확인”이라는 자신들의 해석에 끌어다 붙임으로써 신념을 더욱 강화한다.
둘째, 이는 집단 정당화 이론(system justification theory)으로도 설명할 수 있다. 집단에 속한 구성원들은 자신이 속한 진영과 지도자의 정당성을 지켜야 한다는 심리를 가진다. 따라서 사면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 자기 집단을 정당화하는 방식으로 재해석하는 것이다.
한국 사회의 사면 사례
이러한 왜곡된 해석은 한국 현대사의 사면 사례에서도 반복되어 왔다.
전두환·노태우 사면(1997)
두 전직 대통령은 군사 쿠데타와 5·18 학살 책임 등으로 중형을 선고받았으나, 김영삼 정부 말기와 김대중 정부 초기에 정치적 화해와 국민 통합이라는 명분으로 특별사면되었다. 이때 많은 지지자들은 사면을 곧 ‘죄가 사라졌다’는 신호로 받아들였고, 반대자들은 “정의가 무너졌다”는 분노를 표출했다. 같은 사안을 두고 사회적 해석은 극명히 갈라졌다.
이명박 전 대통령 사면(2022)
다수의 뇌물수수 및 횡령으로 징역 17년형을 선고받았던 이명박 전 대통령도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형 집행 정지와 함께 특별사면을 받았다. 법적으로는 여전히 유죄가 확정된 범죄자였지만, 정치적 지지자들 사이에서는 “억울한 옥살이가 끝났다”는 식의 인식이 확산되었다. 반면 반대 진영은 “사법 정의가 무너졌다”고 강하게 반발했다.
최근의 정치인 사면 사례들 역시 비슷한 양상을 보여 준다. 법률적 의미와는 달리, 사면은 곧바로 ‘정치적 무죄 선언’처럼 소비되며, 지지자들에게는 신앙적 믿음을 강화하는 계기로 작동한다.
갈등으로 이어지는 사면의 왜곡
사면은 어디까지나 정치적·행정적 재량의 산물임에도, 지지자들에게는 “사법 정의가 바로잡혔다”는 상징으로 작동한다. 이때 사회는 같은 사건을 두고도 전혀 다른 현실을 살게 된다. 사실적 정의(factual justice)와 상징적 정의(symbolic justice)가 충돌하면서 갈등은 더욱 심화된다.
사면은 죄가 없어서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믿는 것은, 사실을 인정하기보다 집단의 정체성을 지키려는 심리가 더 강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제도의 의미가 왜곡될 때, 사회적 갈등은 사실을 매개로 한 토론이 아니라, 정체성을 지키려는 신앙적 싸움으로 바뀌어 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