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번에는 다르다.” 시장이 요동칠 때마다 반복되는 말이다. 하지만 역사는 정반대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주가를 예단하려는 순간, 시장은 그 예상을 무너뜨리는 방향으로 움직인다. 우리는 지금도 같은 심리적 함정 속에 있다.
환율이 흔들리고, 지수 방어선이 무너지고, 투자자 심리가 얼어붙을 때 가장 쉽게 빠지는 오류가 바로 ‘예단’이다. 이 오류는 역사 속에서 수없이 반복되었고, 그때마다 시장은 잔인할 정도로 냉정했다.
1. 어빙 피셔: “주가는 영구 고점”이라던 천재의 몰락
1929년 대공황 직전, 당대 최고의 경제학자 어빙 피셔는 이렇게 말했다.
“주가는 영구적으로 높은 수준에 도달했다.”
수많은 사람이 이 말을 믿었고, 그 말이 나온 지 불과 며칠 뒤 시장은 대폭락했다. 다우지수는 89%가 빠졌고,피셔는 전 재산을 잃었다. 여기서 중요한 교훈은 하나다.
✔ 지식이 많다고 미래를 정확히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 확신은 판단력을 마비시킨다.
2. 알란 그린스펀: 세계 최고의 금리통도 속았다
장기 재임한 연준 의장 그린스펀은 2000년 닷컴버블 직전 “생산성 혁명”을 강조하며 기업가치가 과대평가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IT 버블이 터지자:
- 나스닥 –78%
- 수많은 IT기업이 사라짐
- 전 세계 시장이 충격에 빠짐
세계 경제를 좌지우지하던 인물조차 시장의 ‘집단 심리’에 가려져 있었다.
✔ 전문가의 확신도 예단일 뿐이다.
3. 리먼 사태: “부실은 제한적이다”라는 월가의 자기최면
2007~2008년 금융위기 직전, 월가 애널리스트 대부분은 이렇게 말했다.
“서브프라임 부실은 전체 시스템을 흔들만큼 크지 않다.”
그러나 불과 몇 달 뒤, 리먼 브라더스는 파산했고 세계 금융위기가 본격화됐다. 데이터와 모델에 대한 과도한 자신감은 위험을 보지 못하게 만든다.
✔ 확신은 위험을 축소시키고, 의심은 위험을 드러낸다.
4. 일본의 ‘부동산은 절대 안 떨어진다’ 신화
1980년대 일본에서는 “땅값은 절대 떨어지지 않는다”는 믿음이 지배했다. 그 결과는 참혹했다.
- 도쿄 땅값 –80%
- 닛케이는 30년 넘게 고점 회복 실패
- ‘잃어버린 20년’의 시작
여기서 드러나는 심리적 오류는 ‘집단적 확신’의 위험성이다. 시장 전체가 같은 방향을 믿을 때, 오히려 그 믿음 자체가 버블이 된다.
5. 테슬라 공매도 세력: ‘과소평가’도 예단이다
반대 방향의 예단도 있다. 테슬라 초기에 전문가들은 모두 비관적이었다.
- “전기차 시장은 너무 작다.”
- “테슬라는 곧 파산할 것이다.”
- “머스크는 과장광일 뿐이다.”
하지만 시장은 정반대로 움직였다.
- 테슬라 시총, 전통 완성차를 합친 수준으로 확대
- 공매도 세력 역사상 최대 손실 기록
예단은 낙관일 수도, 비관일 수도 있다.
방향이 다를 뿐, 오만이라는 점은 같다.
왜 사람들은 계속 예단에 빠질까?
1) 확실성 욕구
불확실성을 견디는 것은 인간에게 가장 어려운 일이다. ‘모르겠다’라는 상태가 불안하기 때문이다.
2) 자기 능력에 대한 과신
전문가일수록, 과거에 맞춘 경험이 있을수록 “이번에도 내가 맞다”는 착각에 빠진다.
3) 일관성 편향
일단 한 방향으로 말하면, 그 생각을 바꾸는 걸 ‘패배’라고 느껴 더 집착하게 된다.
정리: 시장은 예측이 아니라 대응이다
어빙 피셔, 그린스펀, 월가의 금융 공룡들, 그리고 전 세계 투자자들까지 모두 같은 실수를 반복했다.
미래를 예측하려는 순간,
시장은 그 예측을 깨는 방식으로 움직인다.
✔ 불확실성을 인정할 때 오히려 시장이 보인다.
✔ 확신보다 유연성이 중요하다.
✔ 예단 대신 관찰, 해석, 대응이 시장을 살아남는 길이다.
지금 시장처럼 환율이 출렁이고 지수가 흔들릴 때,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은 악재 자체보다 예단의 함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