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7년 1월 28일 미국 CBS의 60분(60 minutes) 프로그램은 24년 전 이 프로에서 방영되었던 장면을 다시 보여주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화면에 비친 중년의 남자는 자폐증으로 일상생활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으나 요일을 맞추는 데에는 특별한 재주가 있는 사람이었다.
사회자가 “1911년 8월 13일은 무슨 요일입니까?”라고 물어보자 바로 “일요일”이라고 대답한다. “1921년 5월 20일은요?”라는 질문에도 바로 금요일이라는 대답이 튀어나온다.
서번트 신드롬
중년 남자는 질문과 응답 중에도 상대와 시선을 맞추지 않는 전형적인 자폐증세를 가진 사람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어떻게 그렇게 요일을 맞출 수 있느냐는 질문에도 모르겠다고 대답할 뿐이다.
중년남자의 이름은 조지 핀. 그는 전형적인 서번트이다. 서번트란 자폐증이나 발달 장애, 정신 지체장애를 지녔으면서도 특정 분야에서 천재적인 재능을 보여주는 사람을 말한다.
프로그램에서는 조지 핀에 이어 한 젊은이가 소개된다. 겉보기에는 보통 사람과 전혀 다름이 없다. 말을 하는 태도나 대화 중에 상대방과 시선을 맞추는 모습에서는 자폐증을 가진 사람들의 모습이 전혀 없다. 하지만 그 역시 자폐증으로 고통을 받고 있으면서도 슷자와 언어에 천재적인 능력을 보여주는 서번트였다.
진행자가 “저는 1931년 11월 3일날 태어났습니다만”이라고 운을 떼자 태밋이라는 그 청년은 “소수이군요, 1931이라는 숫자는. 당신은 일요일에 태어났습니다. 올해의 생일은 수요일이고, 당신은 올해로 75세가 되는군요”라고 거침없이 말한다.
태밋은 원주율도 소숫점 이하 2만2천1백54자리까지 기억할 수 있다고 했다. 이것은 옥스퍼드대학에서 행한 실험으로 확인되었다. 그는 거의 다섯 시간에 걸쳐 한자리도 틀리지 않고 원주율을 외우는 데 성공했다.
일주일이면 언어를 배울 수 있다
태밋은 숫자의 암기뿐만 아니라 언어 분야에서도 비범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프랑스어, 독일어, 스페인어, 영어 등 현재 총 7개 언어를 자유롭게 구사할 수 있고 또 처음 접하는 외국어를 단 일주일이면 완벽히 익힐 수 있다고 했다.
또 스스로 새로운 언어를 창조하기까지 했다고 말했다. 프로그램에서는 7개의 언어를 구사할 수 있다고 이야기했지만 그후 발간된 자전적 에세이 “브레인맨, 천국을 만나다”에서는 10개로 늘어나 있었다. 그 동안 3개의 언어를 더 익힌 모양이다.

우리는 태밋의 능력을 보고 놀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서번트증후군의 사람들 가운데에는 태밋보다 더 뛰어난 능력을 보여주었던 사람들이 많았다. 가령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에서 소개되기도 했던 조지와 찰스라는 일란성 쌍둥이 서번트는 특정한 날짜를 지정해주면 8만년의 범위 안에서 4만년을 앞뒤로 그 날이 무슨 요일인지 알아맞출 수 있었다. 지금부터 2백년을 전후하여 부활절이 3월23일인 연도를 물어보면, 컴퓨터보다도 더 빠르고 정확하게 대답했다.
이들은 또 어떠한 숫자도 소인수분해를 할 수는 있었지만 덧셈은 하지를 못했다. 10달러를 주고 6달러짜리 물건을 사면 4달러를 거슬러 받아야 한다는 것조차 이해하지 못했다. 이들만이 아니다 서번트 중에는 성경을 완전히 암기한 사람도 있었다. 어떤 소년 서번트는 로마제국흥망사라는 두꺼운 책을 읽고 나서 그것을 전부 암송할 수 있었다.
4살 먹은 시각장애자인 톰이라는 서번트는 주인집 딸이 치는 피아노 소나타와 미뉴에트를 한번 듣고 완벽하게 연주할 수가 있었다. 물론 피아노를 배운 적은 전혀 없다. 나디아라는 네 살짜리 꼬마는 미술에 천부적인 재능을 가졌다. 무엇인가를 한번만 보더라도 레오나르도 다빈치 수준의 솜씨로 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나디아는 뇌에 장애가 있어 심한 자폐증에 빠져 있었다. 언어능력이 떨어져 일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할 정도였지만 그림을 그릴 때면 자폐증세가 일시적으로 멈추기도 했다.
가장 잘 알려진 서번트, 킴 픽
현재 가장 잘 알려진 서번트라면 킴 픽. 영화 레인맨에서 더스틴 호프먼의 연기했던 역할의 모델로 유명하다. 킴 픽은 두개골에 물주머니가 차서 비정상적으로 부푼 상태로 태어났다.결국 뇌의 좌반구는 완전히 손상되었고 좌반구와 우반구를 연결해주는 뇌량도 없었다.
그러나 그는 생후 16개월 만에 글을 읽을 수 있었고 열여섯 살에 고등학교 교육과정을 마쳤다. 킴 픽은 역사, 지리, 음악 등 다양한 분야에서 놀라운 지식을 자랑하는 “걸어다니는 백과사전”으로 유명하다. 한쪽 눈으로 한 페이지씩, 두 페이지를 동시에 읽으며, 그렇게 읽으면서도 읽은 내용을 완벽히 기억해낸다. 지금까지 9천권의 책을 읽었고 그 내용을 모두 기억하고 있다고 한다. 킴 픽은 미국 우편번호를 통째로 외우고 있고 요일, 날짜 계산 역시 탁월한 상상을 불허하는 서번트인 것이다.
킴 픽 처럼 초인적인 서번트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뇌과학자들은 태밋이 뇌의 비밀을 풀어줄 단서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고 있다. 태밋을 두고 신경과학계가 로제타스톤이라 부르며 열광하고 있는 이유는 단순하다. 그것은 태밋은 다른 서번트와는 달리 다른 사람과의 커뮤니케이션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점이다. 이것은 서번트 가운데에서는 대단히 희귀한 케이스이다.
태밋은 신경과학계의 로제타스톤
다른 서번트들은 지능이 50 이하일 뿐 아니라 사람과의 커뮤니케이션 자체에 문제가 있다. 따라서 그들은 자기의 의사를 남에게 전달할 줄을 모른다. 그러나 태밋은 일반 사람과 구별이 전혀 안될 정도로 조리 있게 자기의 의사를 표현할 수 있는 것이다.
태밋이 밝힌 그의 숫자를 기억하는 비밀은 다음과 같았다. 그는 숫자를 공감각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머리 속에서 숫자들은 색이나 모양, 그리고 질감(texture)으로 나타납니다. 어떤 긴 숫자열을 보면, 그 숫자열들은 마음 속에서 어떤 경관으로 나타납니다. 1만자리까지의 모든 수자들은 모두 자기만의 색과 모습과 질감을 가졌습니다 . 저는 이런 식으로 수자들을 심상화했습니다. 숫자의 모습들은 정적이지 않습니다. 숫자들은 질감과 색깔로 가득차 있습니다. 그것들은 모두 생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직관적 심상이라는 것이 있다. 이것은 시각적 이미지로 사물을 아주 뚜렷하고 생생하게 기억하는 것을 말한다. 가령 책을 기억할 때 그 책 한쪽 한쪽을 사진으로 찍듯이 기억한다. 마치 사진같이 기억이 되기 때문에 재생할 때는 그 장면을 불러내기만 하면 된다. 이런 기억능력을 가진 사람들은 아무리 두꺼운 책이라도 그 내용을 기억할 수 있으며 몇 쪽이 무슨 단어로 시작하는지, 가령 187쪽의 20줄째에는 어떤 문장이 있는지를 아주 자연스럽게 기억해낸다. 이러한 직관적 심상과 타멧의 말은 차이가 있다. 이러한 차이를 연구하다보면 뇌와 기억의 비밀이 풀려나갈지도 모른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