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가 없어도 IQ가 126

오늘 소개하는 글은 1980년 사이언스에 실린 유명한 기사와, 2007년 랜싯에 게재된 후속 사례를 다룬 2007년의 글입니다. “뇌가 정말 필요할까?”라는 제목처럼, 뇌의 존재와 지능의 관계에 대해 놀라운 질문을 던지는 내용입니다. 수십 년 전에도 큰 논쟁을 불러일으켰던 이야기지만, 지금 읽어도 여전히 신선한 충격과 흥미를 줍니다.

TV의 ‘믿거나 말거나(Believe it or not)“라는 프로그램을 보다 보면 세상에는 저런 일도 일어날 수 있을까 하는 의심이 저절로 들 때가 많다. 하지만 TV 프로그램이 아니라 권위 있는 학술지나 논문을 읽다가 ”정말로 이러한 일이 있을 수 있을까“ 라는 느낌이 들 정도로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 내용과 마주칠 때도 적지 않다. 가끔 기존의 상식과 학설로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기기묘묘한 결과를 보여주는 연구가 있기 때문이다.

1980년도 “당신의 뇌는 정말로 필요할까(Is Your Brain Really Necessary?”라는 제목의 사이언스지 기사야말로  이런 종류의 대표적인 예일 것이다. 기사를 잠깐 살펴보자.  영국의 세필드대학의 소아과의사인 존 로버에게 한 학생이 찾아왔다. 학생을 담당했던 의사가 학생이 보통 사람보다 머리가 큰 것을 보고 존 로버교수를 찾아보라고 권했던 것이다. 담당의사는 학생의 머리가 지나치게 큰 것을 보고 뇌수종의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던 듯하다. 뇌수종이란 두개내강(頭蓋內腔)에 다량의 수액(髓液)이 괴는 질병이며 로버박사는 뇌수종 연구의 최고 권위자였다.


학생의 뇌를 스캔해본 로버 박사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보통 사람이라면 4.5센티의 뇌조직이 있어야할 부분에 1밀리  남짓한 막만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뇌가 있어야 할 부분에는 유체로 가득찬 공동이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학생은 존 로버 박사의 표현을 빌자면 사실상 뇌가 없는 상태였다.

뇌가 거의 없는 수학과 우등생

뇌가 사실상 없음에도 이 학생은 평소 생활에 아무런 지장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아이큐도 126으로 높은 편에 속했다. 게다가 우등상을 받은 적도 있는 우수한 수학 전공 학생이었던 것이다.

런던 유니버시티 칼리지의 해부학 교수인 패트릭 월은 인터뷰에서 이런 결과에 놀랄 필요가 전혀 없다고 말하고 있다. 이러한 예는 과거의 문헌을 뒤져보면 널려 있다는 것이다. 단지 로버교수의 경우 체계적인 데이터를 갖고 있다는 점이 다를 뿐이라는 것이다.로버교수는 뇌수종을 앓고 있는 253명의 환자들의 뇌를 600장 스캔해 다음과 같은 4그룹으로 분류했다.

  • 거의 정상적인 뇌를 갖고 있는 그룹
  • 두개강의 50~70%가 뇌척수액으로 차 있는 그룹
  • 두개강의 70~90%가 뇌척수액으로 차 있는 그룹
  • 두개강의 95%가 뇌척수액으로 차 있는 그룹

마지막 그룹의 경우 그 숫자가 가장 적어 전 샘플의 10% 미만인 9명에 불과했다. 하지만 이들은 극적인 결과를 보여주었다. 정상인의 5% 정도의 뇌조직을 가졌을 뿐인 이들 가운데 4명은 IQ가 일반인의 평균인 100을 넘고 있었다.

게다가 4명 가운데 2명은 정상인보다도 IQ가 높아 IQ가 126을 기록했다.  반면 나머지 5명의 경우는 IQ가 낮았을 뿐 아니라 심각한 장애를 보여주기도 했다..

로버교수는 이러한 결과를 발표하여 대논쟁을 일으켰다, 비판자들은 스캔 결과를 해석하는 데에 오류가 있었다고 비난했다. 로버교수는 스캔 결과를 해석하는 것이 쉽지 않은 작업임을 인정하면서도 “나는 그 수학과 학생의 뇌가 50그램인지 150그램인지는 정확하게 말할 수 없다. 하지만 정상인의 뇌무게인 1.5킬로그램에 훨씬 못 미친다는 것은 분명히 말할 수 있다”라고 잘라 말하며 비판을 일축했다.

27년 후에 다시 확인된 뇌가 거의 없는 남성

사이언스기사가 발표된지 27년 후인 2007년, 임상의학의 권위지 랜싯(Lancet)에 흥미로운 논문이 게재되었다. 프랑스의 지중해대학의 교수들이 작성한 이 논문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3년 전에 44세의 남성이 프랑스의 마르세이유에 있는 지중해대학(Mediterranean University)의 병원에 내원했다. 왼쪽 다리에 힘이 빠지는 느낌을 느껴 병원을 찾았다는 것이다. 그 환자의 뇌를 CT촬영해본 의사들은 경악했다.

뇌가 있어야 할 장소의 대부분을 위의 사진과 같이 유체로 가득 찬 공동이 차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사진의 중앙에 있는 검은 부분이 액체로 가득찬 공동부분이고, 그 주변에 하얗게 보이는 것이 일반적인 의미의 뇌이다.

그림에 나타나있듯이  남성의 뇌는 얇은 막에 불과했다. 담당했던 의사 Linoel Feuillet는 그 환자의 뇌는 표준보다도 아주 작아 뇌가 거의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존 로버가 보고했던 수학과 학생의 뇌보다 약간 나은 상태였던 것이다

그 후의 테스트에서 남성의 IQ는 75인 것이 확인되었다. IQ 75는 낮은 편이긴 하지만 정상인의 하한에 속한다. 이 남성은 공무원으로 근무하고 있으며 결혼해 아이들 둘을 둔 가장이기도 했다. 이 남성은 병원의 치료로 완치되어 퇴원했으나 뇌의 크기에는 변화가 없었다고 한다.

의사들의 설명으로는 뇌의 변형이 서서히 진행되면서, 뇌의 한 부위가 다른 부위의 기능을 대신하게 되었고 그 덕분에 남성은 지극히 작은 뇌에도 불구하고 정상적인 생활이 가능했다는 것이다.  뇌과학자다운 겸손하고도 전형적인 설명이긴 하지만 뇌에 대해서는 참 알 수 없는 것 투성이라는 느낌이다.

오늘날 흔히 들을 수 있는 “뇌는 5%만 있어도 된다”는 말은 사실 이 사례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입니다. 1980년 사이언스 기사에서 소개된 뇌수종 환자들 가운데 일부가 정상인의 5%도 안 되는 뇌조직으로 살아간다는 보고가 큰 화제가 되었고, 이후 대중적인 표현으로 단순화된 것입니다. 실제로는 극히 드문 사례이고, 다른 환자들은 심각한 장애를 보이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이런 연구가 주는 메시지는 분명합니다. 뇌는 생각보다 훨씬 더 유연하고, 적응력이 크며, 아직도 밝혀지지 않은 비밀이 많다는 것이죠.

Roger Lewin, “Is Your Brain Really Necessary? Science Vol.210, December, 1980, .pp 1232.
Feuillet, L., Dufour, H. &Pelletier, J. Brain of a white-collar worker. Lancet 370, 262,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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