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흥종교나 소수집단종교들은 교세 확장의 수단으로 말세론을 자주 이용합니다. 신도들에게 위기감과 공포심을 줄 수 있을 뿐 아니라 자기들만이 구원받을 수 있다는 일종의 선민의식을 심어줄 수 있기 때문이죠. 어찌 보면 교세를 단시간에 확장시키는 데에는 말세론만한 것이 없을지도 모릅니다.
말세론이 효과적이려면
말세론이 효과를 가지려면 운명의 날이 비교적 짧은 기간 안에 닥쳐야 합니다. 또 그 시기도 구체적이어야 합니다. 100년 뒤에 운명의 날이 온다고 해봐야 코방귀 뀔 사람 별로 없습니다. 따라서 말세론이 효과를 가지려면 적어도 5년안의 특정한 날에 심판이 내려진다고 주장해야 합니다.
따라서 말세론을 주장하는 종교들은 2025년 12월 25일 23시라는 식으로 운명의 날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이것이 양날의 칼이 됩니다. 다가올 운명의 날이 분명해짐으로써 신자들의 신앙심은 깊어지고 교세도 확장됩니다. 동시에 만약 그 날이 아무 일도 없이 평온하게 지나버린다면 종교 교단이 입는 데미지는 이루 말할 수 없게 되죠.
언제나 있어온 광신의 심리
말세론과 관련해서는 우리 사회도 한 차례 심각한 홍역을 치른 적이 있습니다, 1992년 10월 28일 지구의 종말이 온다는 다미선교회를 비롯한 종말론 교회들이 벌인 이른바 “시한부 종말론” 소동입니다. 운명의 날을 일찌감치 앞두고 시한부종말론을 따르는 상당수의 신도들은 생업과 가정을 포기한 채 휴거에 대비하는 집단생활에 들어갔습니다. 이들 시한부 종말론자들이 벌인 이른바 ’10·28 휴거 소동’은 광적인 신자들의 가정 파탄과 가출로 이어지면서 사회적 파문을 불러일으켰습니다. 하지만 정작 10월 28일은 아무런 사건도 일어나자 않았습니다. 어처구니없는 일과성 해프닝으로 끝나고 만 것이죠.
매스컴은 어처구니없는 해프닝이라는 식으로 보도했고, 사람들은 한심하다는 반응을 보였지만 그 때의 광신자들 가운데에는 아직도 종말론이 유효하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다고 합니다. 광신이란 이처럼 무서운 것입니다. 시한부 종말론 소동이 사회적으로 엄청난 물의를 일으켰지만, 이 사건의 전모와 신자들의 심리적인 변화를 이해할 만한 학술적인 보고는 없습니다.
레이크시티 소동
하지만 이와 비슷한 종말론 소동은 전 세계적으로 볼 때는 절대로 드문 예가 아닙니다. 늘 있어 왔습니다. 따라서 사회심리학자들이 직접 참여, 관찰해 신자들의 심리적인 변화를 기록한 연구가 상당히 존재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가운데에서 가장 유명한 케이스인 레이크시티 그룹을 보면서 광신의 심리를 살펴봅니다.

레이크시티 그룹사건의 경과는 다음과 같습니다. 지구밖에 있는 정령들로부터 메시지를 수신하는 여성 교주를 중심으로 하는 레이크시티 그룹이라는 소수파 종교 집단이 미국에서 활동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교주는 정령으로부터 중대한 메시지를 전달받았다고 신도들에 전했습니다.
그것은 “곧 대홍수가 지구를 덮쳐 세계는 멸망하게 되고, 신자들만이 UFO에 의하여 구원을 받는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교주는 운명의 날이 올 때까지, 신자들은 되도록이면 신자가 아닌 사람들과의 접촉을 피하라고 했습니다. 또 마음의 준비를 하며 그날을 기다리도록 신자들에게 교시했습니다.
예언은 빗나갔다
홍수가 올 것이라고 예언된 날 저녁, 신자들은 자신들을 구원해주러 올 UFO를 기다리기 위하여 한 신자의 집에 모였습니다. 하지만 밤이 지나고, 이튿날이 되어도 홍수도 UFO도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렀을 때 보여준 신자들의 반응은 어떠했을까요? 신자들은 교주와 교단이 사기쳤다고 난리 법석을 피웠을까요? 지금까지 자기들이 바친 돈과 시간을 보상하라고 소동을 피웠을까요?
예언이 빗나갔다는 사실에 직면한 레이크시티 신자들의 심리는 어떠했을까요? 물론 처음에는 누구라도 그러하듯이 그들 역시 당혹해 했습니다. 신자들은 예언이 빗나갔다는 사실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무엇이라 말을 하긴 해야 하는데 아무런 할 말이 없었습니다. 일종의 패닉 상황이 도래한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은 잔인한 것이라서 시간이 점점 지나갈수록, 예언이 빗나갔다는 사실을 그들도 인정할 수 밖에 없는 시점이 오기 마련입니다. 이 때, 신자들의 심리에 급격한 변화가 옵니다.
“예언이 빗나갔다”라는 인지와 “신앙을 위해 지금까지 수많은 희생을 해왔다” 혹은 “나는 예언을 믿고 있었다”라는 인지는 서로 모순됩니다. 다시 말하면 심리적으로 불협화상태가 초래되어 심리적으로 불쾌한 상태가 유발됩니다. 어떠한 식으로라도 마음의 평형을 유지하기 위한 조치가 필요해지죠.
우리가 지구를 구했다
예언이 빗나갔다는 사실이야 도저히 바꿀 수 없는 것이니 두 번째 인지 즉 “신앙을 위해 지금까지 수많은 희생을 해왔다”, 혹은 “나는 예언을 믿고 있었다”라는 인지를 바꿀 수 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인지를 바꾸는 방법에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 번째로는 소극적인 방법으로 우선 서로 위로하며 예언이 빗나가게 된 그럴 듯한 이유를 찾아내, 서로가 납득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원래는 예언이 이루어질 예정이었지만, 하느님이 우리의 신앙에 감동한 결과, 보다 많은 사람을 구원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는 식으로 이유를 찾아 서로가 납득하는 것입니다.
신자가 아닌 사람이 들으면 어처구니없는 이야기지만, 실제로 광신자들은 위기가 닥쳤을 때 그럴듯한 이유를 찾아내 그것을 굳건하게 믿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두 번째의 방법은 보다 적극적인 방법으로 새로운 신자를 획득함으로써 자신의 신앙을 강고하게 하는 것입니다. 자신들의 신앙이 올바른 것이라는 것을 신자가 아닌 다른 사람들에게 납득시켜, 즉 자신들의 신앙을 지지해주는 타자의 존재를 확인함으로써 자신들의 신앙이 틀리지 않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확인하는 방법입니다.
레이크시티 신자들의 실제 행동들
예언이 빗나간 후 레이크시티 신자들은 실제로 어떻게 행동을 했을까요?
당연한 이야기지만 레이크시티 신자들은 처음에는 예언이 빗나갔다는 사실을 믿으려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예언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게 된 단계에 이르자, 그들은 예언이 빗나간 이유를 필사적으로 찾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자신들의 독실한 신앙과 기도 때문에 지구는 파괴되지 않았다”라고 결론을 내리고 서로가 위무하며 납득하게 됩니다.
신자들의 신앙은 이후에도 약해지기는커녕 그 때까지 종말론에 회의적이었던 신자들까지도 열렬한 신앙을 갖게 되었습니다. 또한 예언이 빗나가기 전에는 새로운 신자를 받아들이기 위한 포교활동이나 매스컴의 주의를 끌기 위한 활동을 보여주지 않았던 그들이었지만, 예언이 빗나간 후에는 적극적인 PR 활동을 벌였습니다.
사실 그들은 예언이 이루어지면 살아남은 사람들은 자기교단으로 올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생각해 그 전에는 적극적인 포교활동에 나서지 않고 있었던 것입니다.
보통 사람들이 이러한 사태에 마주치면 우리를 속였다고 교주와 교단에 길길이 날뛰며 항의를 할 것입니다. 또한 집기를 때려 부수고 들인 돈 다 토해내라고 한바탕 행패를 부릴 듯합니다. 사실 신자가 아닌 구경꾼들은 이러한 사태가 벌어지기를 은근히 기대하기까지 했습니다. 하지만, 광신자들은 그렇게 무식한 방법을 택하지는 않았습니다. 광신자가 광신자다운 데에는 다 이유가 있는 법입니다. 구경꾼들에게는 실망스러운 사실이지만 그들은 예언이 빗나간데 대한 그럴듯한 이유를 찾아내 서로가 확신을 하고서는, 적극적으로 포교에 나섰던 것입니다. 광신이란 이렇게 무서운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