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치심이 사라진 사회, 어떻게 될까?

수치심은 단순한 감정이 아닙니다. 그것은 사회적 규범을 지탱하는 비공식적인 안전장치입니다. 법과 제도가 미치지 못하는 일상의 영역에서, 다른 사람의 시선만으로도 행동을 조심하게 만드는 힘이지요.

그런데 이 장치가 사라지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규범이 무너지고, 뻔뻔함이 능력으로 포장되며, 결국 공동체 전체가 위험해집니다. 지금 우리 사회가 이런 단계에 있습니다

사회를 지탱하는 네개의 기둥

부끄러움을 잃은 우리 사회에 가장 필요한 것은 바로 염치(廉恥), 즉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일 것입니다. 국어 시간에 배우는 ‘관포지교(管鮑之交)’의 주인공인 관중이 지었다는 《관자(管子)》의 〈목민편(牧民篇)〉에는 “예의염치 시위사유(禮義廉恥 是謂四維)”라는 중요한 가르침이 담겨 있습니다. 이는 ‘”예절, 의로움, 청렴함, 그리고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 이 네 가지를 사회를 지탱하는 네 개의 기둥이라고 한다”’라는 뜻입니다.

《관자》는 이 네 가지 기둥 중 하나가 무너지면 나라가 기울고, 둘이 무너지면 위태로워지며, 셋이 무너지면 뒤집히고, 모두 무너지면 마침내 파멸을 맞이할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우리 사회가 이 네 가지 중요한 기둥 가운데 몇 개를 잃었는지는 명확히 단정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염치라는 두 개의 기둥이 흔들리고 있다는 사실은 부정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관자의 가르침에 비추어 볼 때, 우리나라는 이미 위태로운 상황에 놓여 있는지도 모릅니다.

관자의 이 가르침은 예의염치가 일반 백성 뿐만 아니라 특히 나라를 이끄는 지도층, 즉 대통령을 비롯한 관료와 정치인들에게 얼마나 중요한 덕목인지를 강조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예의염치를 갖추고 국정을 운영해야만 나라가 제대로 기능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이러한 전통은 조선시대에도 이어져, 예의염치는 정치인과 벼슬아치들에게 필수적인 소양으로 여겨졌습니다.

우리 사회 어떻게 될까

대한민국에서도 이러한 전통은 이어져, 과거에는 잘못된 행동으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면 실상이 어떻든 우선 대중 앞에 고개를 숙이고 사죄하며, 책임을 지고 자리에서 물러나는 것이 당연한 불문율이었습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이 당연한 원칙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법을 어기고 사회에 심각한 물의를 일으키고도,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고 반성하기는커녕 검찰의 조작이나 음모라고 뻔뻔하게 강변하는 일이 비일비재합니다.

수치심은 개인을 괴롭히는 감정 같지만, 사실은 사회를 지키는 보이지 않는 울타리였습니다. 그 울타리가 무너진 사회는 훨씬 더 거칠고 피곤해집니다.

우리가 다시 물어야 할 질문은 단순합니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우리 사회 과연 어떻게 됳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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