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와 바닷가재도 고통을 느낄까?

바닷가재와 게는 단순한 재료가 아니라 감정을 느낄 수 있는 존재라는 점이 강조된다. 사람들은 이들의 감정을 인식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으며, 이는 인지 편향에서 비롯된다. 감정을 이해하는 것은 윤리적이고 도덕적 고려의 기초가 되며, 이를 통해 우리는 공감의 범위를 확장할 수 있다.

한 번쯤은 식당 수조 안에서 꿈틀대는 바닷가재를 본 적이 있을 겁니다.
우리는 그것을 “재료”로 인식합니다. 살아 있지만, 느끼는 존재로는 잘 보지 않습니다.

그러나 최근 Psychology Today에 실린 한 칼럼의 제목은 이렇게 말합니다.
“Do Lobsters and Crabs Feel? We’ve Had the Answer for Years.”
(게와 바닷가재는 감정을 느낄까? 우리는 이미 수년 전부터 답을 알고 있었다.)

이미 답은 나와 있었다고요? 그런데 왜 우리는 모른 척하고 있었을까요?

🦞 바닷가재는 ‘느낀다’
그동안 과학자들은 게, 가재, 바닷가재 같은 갑각류에 대해 *“뇌가 단순하니 감정도 없다”*는 가설을 유지해 왔습니다.
하지만 영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에서는 이 생물들이 고통을 인지하고 회피 반응을 보인다는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살아 있는 상태로 끓이는 행위를 법적으로 금지하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이들은 불쾌한 자극을 피하거나, 고통을 줄이기 위해 특정 행동을 반복하는 등, 단순한 반사(reflex) 이상의 행동을 보여줍니다.인간의 방식으로 울거나 신음하지는 않지만, 그 나름의 언어로 ‘아프다’고 말하고 있었던 셈입니다.

👁️ 감정을 ‘표현하지 않는 존재’는 감정이 없을까?
우리는 흔히 감정을 얼굴에 드러내는 동물들, 예를 들어 개나 고양이, 침팬지 등에게는 감정을 인정합니다.
그렇지만 눈도 표정도 읽기 어려운 생물에게는 무의식적으로 ‘느끼지 못할 것’이라 판단하죠.
이것은 일종의 인지 편향입니다.

‘표현하지 못한다’는 것이 곧 ‘느끼지 않는다’는 뜻은 아닙니다.
우리 주변에서도 고통을 잘 말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장애를 가진 아이들, 표현이 서툰 노인들, 트라우마로 무감각해진 이들…

“그 사람은 감정이 없어 보여”라고 쉽게 말하기 전에, 우리는 그 침묵 속에 감춰진 감각을 상상할 수 있어야 합니다.
바닷가재가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은 사실 이것입니다.
“너는 나의 고통을 어떻게 알 수 있니?”


🧠 느낀다는 것은 무엇일까
심리학자들은 고통을 느낄 수 있는가를 생명 윤리의 가장 중요한 기준 중 하나로 봅니다.
철학자 피터 싱어(Peter Singer)도 말했죠.

“어떤 존재가 고통을 느낄 수 있다면, 그는 도덕적 고려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고통은 신경계에서 시작되지만, 해석과 감정의 층위는 인간만의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공감이라는 능력을 통해
자신과 다르게 생긴 존재의 감정조차 상상할 수 있는 존재입니다.
그 상상력이 윤리를 낳고, 보호를 가능하게 합니다.


🔎감정을 이해한다는 것은, 경계를 넓히는 일

게와 바닷가재의 고통을 논하는 일은 단지 동물권에 대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가 어디까지를 ‘감정의 주체’로 인정할 수 있는지,
우리의 공감 능력이 어디까지 닿을 수 있는지를 묻는 심리적 질문입니다.

누군가의 침묵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표현하지 않는 고통을 알아채려면 어떤 감수성이 필요한가

인간 아닌 존재에게도 감정의 언어를 허락할 수 있는가

이 질문들은 결국 우리가 사람답게 살아간다는 것의 정의로 돌아옵니다.

게와 가재는 인간처럼 울지도, 말하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자기만의 방식으로 반응하고, 회피하고, 고통을 드러냅니다.
그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고 해서
고통이 없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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