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I시대, 대학이 긴장해야 하는 이유
최근 팔란티어가 발표한 ‘고졸(혹은 대학 진학을 미룬) 신입 채용 프로그램’은 단지 채용 방식의 변화만을 보여주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교육·노동시장·세대 인식 그 자체가 흔들리고 있다는 신호입니다.
팔란티어의 실험은 무엇인가?
팔란티어는 고등학교 졸업자 또는 대학 진학을 미룬 인재들을 대상으로 한 프로그램을 만들었습니다. 프로그램명은 Meritocracy Fellowship(능력주의 펠로우십). 지원자 기준이 매우 엄격합니다. 예컨대 SAT 1460점 이상 또는 ACT 33점 이상 등 상위 1–2% 정도의 학력/성적을 요구했습니다.
프로그램 슬로건은 “Skip the debt. Skip the indoctrination. Get the Palantir Degree.” 즉 ‘학자금 빚을 피해라, 세뇌(indoctrination)를 피해라, 팔란티어 학위를 가져라’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CEO인 Alex Karp는 “대학 학위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우리가 만드는 새로운 자격증(credential)은 계급이나 배경에 상관없다”라는 언급을 했습니다.
왜 이 실험이 의미 있는가?
- 대학 위상 흔들리다
팔란티어의 발언과 행동은 “대학 진학이 곧 성공의 보장”이라는 기존의 상식을 뒤흔듭니다. 학위를 따르는 대신 실무에 뛰어드는 선택이 더 매력적으로 보이는 시대가 왔다는 메시지입니다.
- AI·기술 시대의 인재 수요 변화
AI 및 데이터 중심 산업에서 ‘빠르게 학습하고 실무에 투입될 수 있는 인재’가 중요해지면서, 전통적인 4년제 대학 교육이 갖는 시간 비용과 기회 비용이 상대적으로 더 커졌습니다. 실제로 대학 대신 실무·스타트업·직무 중심 경험을 쌓는 젊은이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 사회·정치적 함의
이 실험에는 단순히 기술 산업의 채용 전략만 있는 것이 아니라, 대학에 대한 반감/불신이 깔려 있습니다. 일부 우익 진영에서 “대학은 좌경화 돼 있다”, “엘리트 언론·지식인이 대학을 통해 권력을 독점한다”고 보는 시각이 존재하며, 팔란티어의 메시지는 그런 흐름에 호소할 여지가 있습니다.
- 교육·노동시장 생태계의 재편
만약 이런 흐름이 확대된다면, 대학은 재정·입학·교육내용 측면에서 압박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고졸‧직무직 중심의 채용, 기업 주도형 교육 프로그램이 더욱 증가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대학은 긴장해야 할까? 그 이유들
학생 유입 및 재정 압박
대학이 진학을 선택하는 주요 경로였던 시대가 위축될 수 있습니다. 학생이 ‘대학 대신 취업 또는 기업 프로그램’으로 방향을 틀면, 대학들은 등록금 수입 감소·학과 축소 등의 위기를 겪을 수 있습니다.
교육 내용 및 의의 재검토
전통적 대학 교육이 ‘지적 성장, 비판적 사고, 교양’ 등을 강조했는데, 기업 쪽 흐름은 더 ‘실무결과중심’입니다. 대학은 자신만의 차별화, 즉 교양 및 인문·사회적 반성이 결합된 교육의 가치를 다시 강조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입학체계·신뢰성 약화
팔란티어가 “대학 입학 기준이 결함이 있다”고 지적한 부분이 있습니다. 이는 대학이 입시‧선발 시스템을 개혁해야 한다는 압박을 의미합니다.
기업과의 경쟁 구도
기업이 직접 채용+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면서, 대학은 ‘기업 외곽의 교육 기관’ 지위를 유지할지, 아니면 ‘기업과 협업하는 하이브리드형’으로 전환할지 선택해야 합니다.
이 흐름이 긍정적이기만 할까?
물론 경계해야 할 요소들도 많습니다.
접근성 문제: 팔란티어 프로그램이 상위 1-2% 학력자를 대상으로 한다는 점에서, 고졸 전체 혹은 일반 고교 졸업자 전체로 확대될 가능성은 의문입니다.
교육의 깊이·비판적 사고 결여 위험: 대학이 제공하는 교양·비판적 사고의 측면은 기업 직무 프로그램에서 축소될 수 있습니다. 이는 인재가 일만 하는 기계적 역할로 한정될 위험을 내포합니다.
노동시장 유연성·안정성 저하 가능성: 기업 주도형 채용이 확대되면 ‘기업 내 빠른 승진·역량개발’ 기회는 있을 수 있지만, 대학 학위가 제공하는 ‘경력 전환 및 다중 진로’의 유연성은 떨어질 수 있습니다. 경제적·사회적 리스크도 고려해야 합니다.
결론
AI가 주도하는 시대에 접어들면서, ‘학위’는 여전히 중요하지만 그 의미와 무게는 변하고 있습니다. 팔란티어의 실험은 이 변화의 전조(前兆)일 수 있습니다. 대학은 변해야 합니다.단순히 ‘학위 수여 기계’가 아니라 미래 사회에서 필요한 지적 역량과 인간적 깊이를 제공하는 기관으로 거듭나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오히려 ‘대학 대신 기업’이라는 선택지가 생겨난 지금, 어떤 교육 경로가 나에게, 나아가 우리 사회에 더 의미 있는가를 다시 물어야 할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