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이에게 문제가 생겼을 때, 사회는 가장 먼저 엄마를 의심해 왔습니다. 자폐증의 원인을 ‘냉담한 엄마’ 탓으로 돌렸던 과거의 이론은 대표적입니다. 하지만 자폐증이 뇌 발달과 관련된 신경학적 조건이라는 사실은 이미 명확히 밝혀졌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오랫동안 ‘엄마 비난(mom-blaming)’이 반복되었을까요?
자폐증에서 시작된 엄마 비난
20세기 중반, 자폐증을 연구하던 일부 학자들은 아이가 부모와 정서적 교류를 하지 않는 이유를 엄마의 양육 태도로 설명했습니다. 차갑고 애정 없는 ‘냉장고 엄마(refrigerator mother)’라는 표현까지 쓰였죠. 이로 인해 수많은 부모, 특히 엄마들이 부당한 죄책감과 낙인을 떠안아야 했습니다.
자폐증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엄마 비난은 자폐증에만 국한되지 않았습니다.
조현병: 모순된 메시지를 주는 ‘이중 구속 어머니’가 아이를 병들게 한다는 주장이 있었습니다.
섭식장애: 딸의 거식증 원인을 엄마의 과잉간섭이나 냉정함으로 설명하곤 했습니다.
비행 청소년: 아버지보다는 엄마의 ‘방임’이나 ‘과잉보호’가 문제로 지목되었습니다.
이처럼 아이의 문제 = 엄마의 책임이라는 단순화가 오랫동안 반복되었습니다. 이는 ‘양육은 여성의 몫’이라는 성 역할 고정관념과 맞물려 있습니다.
피해자 비난 심리와의 연결
엄마 비난은 사실 더 넓은 맥락에서 피해자 비난(victim-blaming)과 같은 심리적 뿌리를 갖고 있습니다.
- 공정 세계 가설
사람들은 “세상은 공정하다”는 믿음을 지키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누군가 어려움을 겪으면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라며 피해자나 가까운 가족을 탓하는 쪽으로 생각을 기울입니다. - 통제 욕구
아이의 장애나 질환처럼 예측 불가능하고 불안한 상황에서, ‘원인은 엄마 탓’이라고 하면 문제를 단순하게 설명할 수 있고, 상황이 통제 가능해 보입니다. - 성 역할 고정관념
돌봄 책임을 여성에게 집중시키는 문화 때문에, 아버지보다는 엄마가 더 쉽게 비난의 대상이 됩니다.
정리
엄마 비난은 단순히 과거 의학의 잘못된 가설이 아니라, 불확실한 문제를 피해자나 약자에게 전가하려는 인간 심리의 한 표현입니다. 자폐증의 역사에서 나타난 ‘엄마 비난’은 결국 피해자 비난 심리와 맞닿아 있으며, 오늘날에도 다양한 모습으로 반복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