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미 간 핵잠수함 협상은 겉으로는 안보 협력처럼 보이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둘은 서로 전혀 다른 꿈을 꾸고 있다. 미국은 제조업 재건을, 우리는 핵무장을 꿈꾸고 있는 셈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필리 조선소에서 건조하라”고 언급한 건 상징적이다. 핵연료 공급 문제의 본질을 피해 가면서, 동시에 미국 내 일자리와 조선업 부흥 메시지를 던진 것이다. 1980년대 이후 붕괴된 미국 조선업을 되살리려는 트럼프의 구상은 ‘산업 애국주의(industrial patriotism)’에 가깝다. 따라서 안보를 이야기하지만 속내는 제조업 복원이다.
반면 한국이 원하는 것은 단순히 핵잠수함 한 척이 아니다. 핵연료 자급 능력과 추진체 설계 기술, 즉 핵잠을 ‘우리 손으로 완성하는 자주권’이다. 한국의 조선 능력은 이미 세계 최고지만, 핵연료라는 마지막 퍼즐이 없다. 그래서 우리는 미국에 연료 지원을 요청했고, 트럼프는 그 대신 “우리 조선소를 써라”는 식의 답을 내놓았다.
이 미묘한 교차점이 바로 핵심이다. 미국은 통제를, 한국은 자립을 원한다. 미국 입장에서 한국의 핵연료 자립은 비확산 체제의 균열이자 통제력 상실이고, 한국 입장에서는 여전히 ‘기술 종속의 족쇄’다.
결국 이번 협상은 누가 먼저 자기 꿈을 접느냐의 싸움으로 갈 가능성이 높다. 미국은 산업의 부활을, 한국은 군사적 완결성을 원한다. 두 꿈은 맞닿지 않는다. 협상의 언어가 아무리 우호적으로 들려도, 그 밑에는 서로 다른 계산서가 깔려 있다.
결국 “필리 조선소에서 만들라”는 말은, “핵연료는 우리가 쥔다”는 뜻과 다르지 않다. 그래서 이번 협상은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주권의 문제, 그리고 각 나라가 꾸는 꿈의 방향이 다른 게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