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갖고 있는 서번트능력: 서번트신드롬(2)

서번트나 자페증과 같은 자폐 스펙트럼 장애가 있는 사람은 보통 사람과는 사물을 인지하는 방법이 다르다. 이른바 약 중앙응집성(weak central coherence)이라고 불리는 것으로 이것은 정보를 처리할 때 전체적인 정보를 포기하고 세부적인 것을 주로 처리하는 경향을 말한다. 

서번트, 나무는 보지만 숲을 보지는 못한다 

보통 사람들은 정보를 처리할 때 자잘한 부분은 무시한 채 문맥과 큰 틀에 맞추어 처리하는 경향이 있다. 숲은 보지만 나무를 못 보는 식이다. 반면  자폐 스펙트럼 장애가 있는 사람들은 세부적인 것에 집착하는 나머지 전체를  알아차리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나무는 보지만 숲을 못 보는 것이다. 이러한 경향은 그림과 같은 인지심리함자 네이본의 과제를 이용한 실험에서 확인할 수 있다. 

우리는 그림이 H자라는 것을 한 번에 알 수 있다. 하지만 자폐 스펙트럼 장애가 있는 사람은 A라는 세부적인 요소에만 자동적으로 초점을 맞추고 있어, 그 세부적인 요소가 이루는 H자를 알아차리지 못한다. 이와 같은 인지경향과 서번트의 비범한 능력이 관계가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확실한 것은 알려져 있지 않다. 

좌뇌의 손상과 우뇌의 보상 이론 

서번트들이 특정한 분야에서 비범한 능력을 보여주는 것은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일까? 서번트의 능력과 관련해 지금까지 수많은 이론들이 제시되었으나 현재 가장 설득력이 있는 것은 “좌뇌의 손상과 우뇌의 보상” 이론이다. 

서번트의 비범한 능력의 대부분은 우뇌와 관련이 있고, 부족한 능력의 대부분은 좌뇌와 관련이 있다. 참고로 좌뇌는 언어, 수학적인 계산 규칙적인 개념에 대한 분석이나 추상적 분석을 주로 담당한다. 이에 비해 우뇌는 공간적인 관계와 시각화를 주로 담당한다. 
어린 시절에 입었던 좌뇌의 손상이 역설적인 기능촉진을 불러오고, 이후 손상되지 않은 우뇌반구에 대한 의존이 커지는 과정을 통해 강력한 보상작용이 일어나 그것이 특정한 분야에서의 비범한 능력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사실 서번트 가운데에는 좌뇌가 손상된 사람이 상당히 많다. 지난번에 말한 태밋도 어린 시절의 간질발작으로 좌측 측두엽이 손상되었고, 레인맨의 모델인 킴 픽 역시 좌뇌가 손상된 채로 태어났다. 

평범하게 지내던 사람들이 뇌질환과 뇌손상 이후 서번트 능력이 발현되는 후천적 서번트들의 경우에도 좌뇌의 전면 측두엽 기능장애가 공통적으로 발견된다. 유사한 변화가 전측두엽 치매환자의 경우에도 확인된다. 이러한 환자들의 일부에서는 미술과 음악에 대한 관심과 능력이 치솟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언어가 미술적 능력을 잡아먹기도 한다 

또한 좌뇌의 기능인 언어의 습득이 우뇌의 기능인 천재적인 미술능력을 잡아먹는 경우도 있다는 것은 좌뇌손상, 우뇌보상이론을 지지해준다. 지난번에 이야기했던 나디아 소녀 서반트의 예는 극적이다. 

나디아는 다섯 살 때에는 영국 전역에서 무작위로 선발된 2만4천명 가운데에서 나디아의 작품이 가장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았다. 나디아가 좋아하는 주제는 동물인데 특히 말을 자주 그렸다. 

나디아는 일곱 살 때 자폐아를 위한 특별학교에 입학했다. 그때 벌써 나디아를 담당하고 있었던 심리학자는 만일 나디아가 말을 배우게 되면 그녀의 미술적 재능은 완전히 사라지고 말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경고는 현실이 되어 나타났다. 특수학교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언어의 기초를 끝내자 그녀의 미술적 재능은 완전히 고갈되고 만다, 결국 언어체계의 습득이 그녀의 미술적인 재능을 완전히 잡아먹고 만 것이다. 미술적 재능과 언어능력 사이에 완벽한 교환이 일어나 버렸다. 

물론 “좌뇌 손상, 우뇌 보상”이 서번트의 모든 것을 설명해주는 것은 물론 아니지만, 서번트의 비밀을 밝혀줄 유력한 단서가 되어주고 있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기억은 잊혀질 뿐 사라지지는 않는다 

서번트의 능력 가운데 공통적인 것은 초인적인 암기력일 것이다. 두꺼운 책이나 전화번호부를 통째로 외우거나 지도책 전부를 암기하기도 한다. 이것은 보통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이기에 우리는 서버트를 보고 놀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서번트 연구자들은 우리들 모두에게 서번트와 같은 능력이 내재되어 있다고 보고 있다. 후천적 서번트 처럼 평범하게 지내던 사람들도 뇌질환과 뇌손상으로 비범한 능력이 발현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다만 중추신경계 손상이나 치명적인 질병없이 이런 능력을 어떻게 찾아내느냐가 문제일 뿐이라는 것이다, 
저명한 신경외과의 펜필드는 작은 전기 탐침으로 측두엽 피질을 자극하자 환자들은 까마득하게 여겨졌던 기억들을 회상해내기 시작했다. 몇 년전의 전화통화는 물론 어린 시절 들었던 자장가 소리까지 기억해냈다. 같은 부분을 자극할 때마다 정확히 같은 노래가 들린다는 것이다,  이 기억들은 스냅사진 같이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실제 그 자리에 있는 것 처럼 생생하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펜필드박사는 이 연구를 통해 인간의 두뇌는 그가 경험했던 모든 일들을 영원히, 그리고 낱낱이 기록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까맣게 잊은 듯이 보이는 것은 그 기억에 접근할 수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트래퍼트 박사는 나트륨 아미탈 정맥주사로 특정 부분을 자극하자 환자들은 수년전에 다녀왔던 여행에 대해 자세하게 기억해냈다. 여행 중 목격했던 신호등의 정지신호까지도 기억할 수 있는 정도였다 

시드니대학의 스나이더교수는 좌측두엽을 TMS라는 장치로 자극하여 일부 대뇌활동을 일시적으로 억제하면 서번트와 비슷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스나이더의 실험에 참가했던 일부 피험자는 그림그리기 및 읽기 능력이 향상되었다고 하는 데 아직은 두고 볼 일이다. 

지금 뇌과학의 발전이 눈부시긴 하지만 트래퍼트박사가 말하고 있듯이 서번트신드롬과 같이 재능과 장애가 동시에 존재하는 현상이 완전히 파악되지 않는 한 어떤 설명도 뇌기능을 완전하게 설명한다고 볼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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