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우리는 늘 ‘내가 옳다’고 믿는가 – 나이브 리얼리즘의 함정

나이브 리얼리즘은 사람들 사이의 갈등을 유발하는 심리적 믿음으로, 자신은 객관적이고 합리적이라고 생각하며, 반대자의 견해는 왜곡되었다고 간주한다. 이로 인해 대화는 논쟁으로 변해 신뢰가 약해지고, 서로 다른 현실을 인정하는 것이 중요한 대화의 시작점이 된다.

“나는 있는 그대로 말했을 뿐인데, 왜 그렇게 받아들이지?”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틀린 건 아닌 것 같은데…”
우리는 종종 이런 생각을 한다.
그리고 어느 순간, 깨닫는다.
상대도 똑같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을.

이런 상황에서 갈등은 시작된다.
하지만 문제는 의견의 차이 그 자체보다, ‘나는 옳고 너는 틀리다’는 확신이 동시에 작동한다는 점이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나이브 리얼리즘(naive realism)’이라고 부른다.
직역하면 ‘순진한 현실주의’.


말 그대로 “나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고 있고, 내 판단은 객관적이며 합리적이다”라는 믿음이다.
반대로, 나와 다른 견해를 가진 사람은 정보가 부족하거나, 감정적이거나, 편향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이 믿음은 일상 곳곳에 숨어 있다.

정치 이야기를 할 때, 우리는 상대가 왜곡된 시선으로 세상을 본다고 느낀다.

가족과 갈등이 생겼을 때, 우리는 “나는 그냥 사실을 말했을 뿐인데 왜 저렇게 반응하지?”라고 생각한다.

친구의 선택이 이해되지 않을 때, 우리는 “내가 봤을 땐 분명히 저건 아닌데…”라고 여긴다.


문제는, 상대도 똑같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모두가 ‘나는 옳다’고 믿을 때, 대화는 설득이 아니라 대립이 되고 만다.


사회심리학자 리 로스(Lee Ross)는 이 현상을 실험으로도 보여줬다. 참가자들에게 같은 이미지를 보여주고 해석하게 했더니, 자신의 정치적 입장에 따라 전혀 다른 판단을 내렸다.그리고 상대방의 해석에 대해 “왜곡됐다”, “감정적이다”라고 비난했다.
하지만 정작 자신의 해석은 “있는 그대로 본 것”이라 여겼다.

우리는 모두 자신의 눈이 ‘렌즈’가 아니라 ‘창문’이라고 믿는다.렌즈는 왜곡될 수 있지만, 창문은 세상을 투명하게 보여준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이브 리얼리즘이 위험한 이유는,우리가 서로 다른 현실을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잊게 만든다는 데 있다.
상대의 관점에 대해 “그럴 수도 있겠네”라고 말하는 대신,“왜 저렇게 비합리적이지?”라고 판단하게 만든다.

이 믿음은 갈등을 심화시킨다.설득하려는 말은 곧 ‘가르치려는 말’이 되고, 대화는 ‘이해의 장’이 아니라 ‘논쟁의 무대’가 된다.
결국 감정만 상하고, 서로에 대한 신뢰는 더 멀어진다.


우리는 모두 자기 나름의 현실을 살아간다.문제는 그 현실이 유일하다고 믿는 데서 출발한다.진짜 성숙한 대화는 ‘상대의 현실’을 잠시 빌려보려는 시도에서 시작된다.

#심리학 #대화의 기술 # 의견충돌 #심리기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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