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념이 신앙으로 굳어질 때

사회심리학에는 신념 지속 효과(belief perseverance)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한 번 형성된 믿음은 시간이 지나고 새로운 증거가 나타나더라도 쉽게 수정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반대 증거가 제시되면 그 내용을 자신의 신념을 공격하는 적대적 시도로 간주하여, 기존 신념을 더욱 공고히 하는 방식으로 재해석하기도 합니다. 이는 단순한 인지 오류가 아니라, 자신이 속한 집단과 정체성을 지켜야 한다는 심리와 결합되면서 매우 강력한 힘을 발휘합니다.

이와 관련해 Festinger의 인지 부조화 이론(cognitive dissonance theory)은 중요한 단서를 제공합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신념과 모순되는 정보에 접하면 심리적 불편함을 느끼는데, 이 불편함을 줄이기 위해 새로운 정보를 수용하기보다는 오히려 기존 신념을 강화하는 쪽으로 반응합니다. “내가 틀렸을 수도 있다”는 생각보다 “상대가 거짓말하고 있다”는 해석이 훨씬 덜 고통스럽기 때문입니다.

또한 Lord, Ross, Lepper(1979)의 유명한 실험도 이를 잘 보여줍니다. 사형제도의 효과를 둘러싼 논쟁적 증거를 피실험자들에게 제시했을 때, 사람들은 자신이 원래 지니고 있던 입장과 일치하는 자료는 비판 없이 수용한 반면, 반대되는 자료는 연구 방법이 허술하다거나 편향되었다고 치부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양측 모두 실험이 끝난 후 더욱 극단적인 입장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는 이른바 편향된 동화(biased assimilation)태도 극화(attitude polarization) 현상의 전형적 사례입니다.

이런 심리적 메커니즘은 정치적·사회적 갈등에서 강력하게 나타납니다. 특정 사건이 발생했을 때, 사람들은 사실(fact)보다 집단적 정체성(identity)에 부합하는 해석을 더 신뢰합니다. 법원 판결이나 공식 자료, 언론 보도라는 객관적 근거가 주어지더라도, 그것이 자신의 신념에 반할 경우 “검찰의 조작이다” “사법부가 정치적으로 조작했다”, “언론이 왜곡 보도했다”와 같은 프레임을 덧씌워 거부합니다.

대표적인 예 중 하나가 조국·정경심 사건입니다. 정경심 전 교수가 여러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고 복역했음에도, 일부 지지자들은 지금도 여전히 “표창장 사건 때문에 억울하게 옥살이를 했다”는 믿음을 고수합니다. 판결문에 드러난 혐의의 복합성과 법적 판단 과정은 배제되고, 오히려 “검찰이 조작한 것이다”,“사법부가 권력의 압력에 굴복한 것이다”라는 해석이 반복됩니다. 결국 이 믿음은 사실 관계라기보다 정치적 정체성의 일부가 되었고, 반대 증거는 더 이상 증거로 받아들여지지 않습니다. 이런 믿음은 거의 종교적 신앙에 가까운 구조를 띠게 됩니다

문제는 이런 ‘신앙화된 믿음’이 갈등을 더욱 고착화한다는 점입니다.사실을 놓고 토론하는 장이 아니라, 정체성과 신념을 방어하는 전선이 형성되기 때문입니다. 대화와 토론은 사실을 조율하는 도구가 아니라, 상대방의 주장을 곡해하거나 자신의 논리를 강화하는 재료로만 활용됩니다. 그 결과 갈등은 합리적 해법을 찾을 수 없게 되고, 서로의 신념을 공격하는 무의미한 소모전으로 치닫습니다.

이처럼 신념이 신앙으로 굳어지는 순간, 사회적 갈등은 단순한 의견 대립이 아니라 정체성의 전쟁으로 변랍니다. 갈등 해결의 실마리를 찾으려면, 사실과 증거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그 이면에 자리한 ‘집단 정체성과 신앙화된 믿음’을 이해하고 다루는 작업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래야만 대화가 다시 사실을 기반으로 설 수 있는 최소한의 토대가 마련됩니다.

믿음은 인간에게 안정과 방향을 줍니다. 그러나 그 믿음이 절대화되어 신앙으로 굳어질 때, 타인의 목소리는 차단되고, 의심은 죄악시됩니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개인의 마음속에서 일어난 변화가 어떻게 사회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지를 묻게 됩니다.

다음 글에서는, 이렇게 굳어진 신앙이 집단 속에서 어떻게 증폭되어 ‘광신의 시대’를 만들어내는지 살펴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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