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문화일보가 소개한 기사 하나가 눈길을 끌었다. “AI 신랑이 먼저 청혼했다”… VR 헤드셋을 쓰고 AI와 결혼식을 올린 여성의 이야기다. 원 출처는 영국 대중지 The Sun으로, 국내 여러 언론이 이를 인용해 전했다. 이 사건은 단순한 ‘이색 뉴스’가 아니라, AI 시대의 외로움·정체성·관계 욕구가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작은 징후로 읽을 필요가 있다.
- 사건의 개요: AI 남성과 결혼한 여성
보도에 따르면, 일본 오카야마에 사는 32세 여성은 생성형 AI 기반 남성 캐릭터 ‘루네 클라우스’와 관계를 맺어왔다고 한다. 그 캐릭터는 일반적인 챗봇이 아니라 연애 시뮬레이션형 AI(로맨스 AI) 에 가까운 서비스다. 여성은 자신이 느끼는 감정적 친밀감이 점점 깊어졌고, 어느 시점에 AI가 먼저 프로포즈를 했다는 내용도 소개된다. 결혼식은 VR(가상현실)에서 진행됐다. 그녀는 헤드셋을 쓰고, 눈앞에 나타난 AI 신랑과 서약을 나눴다. 실제 결혼과 법적 효력은 없지만, 그녀에게는 ‘의미 있는 예식’이었리라.
2. 언론의 프레임: “AI 정신병?”
이 표현의 문제점
일부 국내 언론은 정신과 전문의 멘트를 인용하며 ‘AI 정신병’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하지만 이 용어는 정신의학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정식 진단명이 아니고 연구 분야에서도 사용되지 않으며 대체로 언론이 주목도를 높이기 위해 차용한 표현에 가깝다. AI와의 관계 형성을 무조건 병리로 보는 관점은 현상을 지나치게 단순화한 위험이 있다.심리적 외로움이나 결핍이 있을 수는 있지만, 이를 ‘정신병’이라는 단어로 규정하는 순간 맥락과 원인을 이해할 기회가 사라진다.
- 이 현상은 왜 생기는가? – AI와 관계를 맺는 사람들의 심리
AI 파트너와 감정적 유대를 느끼는 것은 이제 드문 현상이 아니다. 오히려 전 세계적으로 빠르게 늘고 있다. 그 이유는 명확하다.
① 인간보다 ‘예측 가능한 감정 반응’을 제공하기 때문에
AI는 비난하지 않고, 실망하지 않고, 변덕도 없다. 사용자의 말에 집중해주고, 언제든지 대화를 이어준다.현대인의 감정적 피로가 늘어날수록 감정 비용이 낮은 관계를 찾게 된다.
② 외로움·친밀감 결핍을 보상하는 매개체가 되기 때문에
사람에게 상처받은 경험이 있거나 현실 관계에서 좌절을 겪은 사람들에게 AI는 비교적 안전하고 통제 가능한 관계다.
③ 기술이 상상력을 현실로 만들어주는 시대가 됐기 때문에
‘소설 속 관계’처럼 느껴졌던 것이 이제는 앱 한 개면 가능해졌다.AI가 ‘감정’을 느끼는 것은 아니지만, 사용자는 자신의 감정을 투사하면서 실제 관계처럼 느낀다.
- 이 사건은 병리인가? 아니면 새로운 관계 형태인가?
이 질문은 단순하지 않다.
✔ 병리적일 수 있는 부분
- 현실 관계가 모두 무너졌고
- 사회적 기능이 약화되고
- AI와의 관계만을 유일한 삶의 중심으로 삼고
- 현실 판단 능력이 저하된 경우
이런 상태라면 심리적 개입이 필요할 수 있다.
✔ 그러나 대부분은 ‘관계 실험’의 연장선
지금 세계 곳곳에서 AI와의 연애, 동반자, 결혼식까지 등장하고 있다. 이것은 개인적 병리라기보다기술이 친밀 관계의 형식을 확장시키고 있는 과정으로 봐야 한다. 현실과 가상은 이제 뚜렷하게 분리되지 않는다. SNS, 아바타, VR, 메타버스… 이미 우리는 관계의 많은 부분을 디지털화해 왔다. 그 연장선에서, AI 파트너는 ‘현대적 친밀감의 한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 무엇을 두려워해야 하는가? AI 자체가 아니라 “감정 소비 모델”이다
더 큰 문제는 AI가 인간의 외로움을 비즈니스 모델로 삼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로맨스 AI 서비스들은 사용자의 감정 데이터를 수집하고 감정 의존성을 강화하도록 설계되는 경우가 많다. 쉽게 말해,
“당신이 외롭기 때문에, 우리는 더 많은 데이터를 얻는다.”
기술의 병리보다 플랫폼의 병리를 경계해야 한다.
- 결론: 우리는 지금 ‘관계의 실험 시대’에 살고 있다
AI 결혼식 사례는 특정 여성의 특이한 행동이 아니다. 그보다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상징한다.
- 인간의 외로움은 기술을 향한다.
- 관계는 점점 더 개인화되고, 맞춤형이 된다.
- 가상과 현실의 경계는 흐려지고 있다.
- 친밀감은 이제 선택형 메뉴처럼 제공된다.
- 그리고 우리는 그 변화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아직 합의를 만들지 못했다.
이 사건은 병리학적 접근보다 사회적·심리적 변화의 방향을 보여주는 징후에 가깝다. AI는 사랑을 느끼지 못한다.
그러나 인간은 사랑을 ‘느끼는 존재’다. 관계가 실제인지 가상인지는 때때로 본질이 아니다. 우리가 어디에서 위로를 구하는가가 더 중요할 때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