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며칠 전 언론에 이런 기사가 실렸습니다.“뇌 없이 태어나 네 살을 못 넘긴다던 딸… 스무 번째 생일 맞았다”무뇌증(Anencephaly)으로 태어난 아이가 예상 수명을 훌쩍 넘겨 장기간 생존한 사례입니다. 의학적으로는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 발생할 때,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한 가지를 묻게 됩니다. “도대체 뇌란 무엇이길래, 어떤 부분이 없어도 살아 있고 어떤 부분이 없으면 인간다움이 사라지는 걸까?” 이 질문을 중심으로, 뇌의 구조와 기능을 쉽게 풀어보려 합니다.
- ‘뇌’는 하나의 통짜 기관이 아니다
우리는 보통 뇌를 하나의 거대한 장기로 떠올리지만, 뇌는 사실 여러 개의 모듈 기능이 조합된 시스템에 가깝습니다.그중 생명 유지에 반드시 필요한 부위는 의외로 많지 않습니다.
● 생존을 가능하게 하는 핵심
뇌간(Brainstem)
- 호흡
- 심장박동 조절
- 체온 유지
- 기초 반사
- 기본적인 ‘각성’ 상태 유지
뇌간만 남아 있어도 사람은 의식이나 사고 없이도 생존 자체는 가능하다. 무뇌증 장기 생존 사례가 바로 여기에 해당한합니.
● 인간다운 기능을 담당하는 핵심
- 대뇌피질(언어·기억·감정·판단)
- 전전두엽(자기조절·사회성·‘자기’라는 감각)
- 변연계(정서 반응)
이 영역의 손실은 생존과 무관하지만, 우리가 ‘인간답다’고 여기는 기능을 불가능하게 만듭니다.
2. 의사들은 왜 “4세 넘기기 어렵다”고 했을까?
전통적으로 무뇌증 환아는 출생 직후 사망하거나, 수일~수주 이내 생존이 가장 일반적인 경과였습니다. 그런데 진단명은 같아도 기형 형태는 모두 다릅니다. 아주 드물게 뇌간이 상대적으로 온전하게 남아 있거나 예상보다 많은 뇌조직이 기형 형태로 존재하거나 호흡·흡입 반사가 유지되는 구조가 발견될 때 생존 기간이 길어질 수 있습니다. 최근 보도되는 장기 생존 사례들은 대부분 이런 예외적 조건을 가진 경우입니다.
3. 이런 사례가 보여주는 ‘뇌의 본질’
① 뇌는 “전부가 동시에 필요한 장기”가 아니다
심장은 멈추면 즉시 죽지만, 뇌는 기능이 분산된 네트워크이기 때문에 일부만 남아 있어도 그 기능은 유지될 수 있습니다. 즉, 생존과 사고는 전혀 다른 층위의 기능입니다.
② 사고·언어·감정은 뇌간만으로는 불가능
장기 생존한 무뇌증 사례의 대부분은
- 의식 없음
- 의미 있는 감정 표현 없음
- 학습·언어 불가
- 의도적 행동 불가
이런 상태입니다. 생명은 유지되지만 “자기”는 없습니다. 이는 곧 뇌의 고등 기능은 대뇌피질이라는 특정 회로에만 남아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③ 영유아의 뇌는 ‘가소성’이 매우 높다
가끔 예상보다 오래 생존하는 결정적 요인은
- 신경 회복
- 기능 재배치
- 우회 회로 형성
같은 영유아 뇌의 뛰어난 ‘자기 보정 능력’ 때문입니다. 즉, 영유아 뇌는 “주어진 조건 안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남는 방향으로 재설계”하려 합니다.
4. 이런 사례가 요즘 더 많이 보도되는 이유
실제로 무뇌증 장기 생존이 갑자기 늘어난 것은 아닙니다. 다만
- SNS 확산
- 의료기술 향상(감염 관리, 영양 관리)
- 생명윤리 이슈에 대한 언론 관심 증가로 인해 ‘드물지만 존재하던 사례들’이 더 널리 알려지고 있을 뿐입니다.
5. 뇌의 역할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생명을 유지하게 하는 뇌와, 인간답게 만드는 뇌는 서로 다른 부분입니다.” 무뇌증 장기 생존 사례는 이 사실을 가장 극적으로 증명합니다. 뇌는 생명 유지라는 최소 기능에서부터 인간의 정신세계 전체까지, 층위가 전혀 다른 기능들을 여러 조각으로 나누어 가지고 있는 장기입니다. 뇌는 우리를 살게 합니다. 그러나 뇌가 있어야만 우리가 ‘우리 자신’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