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하지도 않는 나라를 팔아 먹은 남자

한때 세상에는 ‘존재하지 않는 나라’를 팔아넘긴 사기꾼이 있었습니다. 깃발, 지도, 외교 문서까지 근사하게 꾸며놓자, 사람들은 그 나라가 실재한다고 믿었습니다. 심지어 그 나라의 국채를 산 사람까지 있었습니다. “존재하지 않는 나라의 국채”,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일이지만, 놀랍게도 실제로 일어났던 사건입니다.


나는 왕이다

1820년대, 스코툴랜드의 맥그리거는 자신이 중앙아메리카 모스키토 해안에 ‘포야이스’라는 번영한 신생 국가의 왕이 되었다고 주장했습니다. 사실 포야이스란 나라는 없었습니다. 그는 왕도 아니었습니다. 그는 상상의 나라를 만들어 자칭 왕이라 칭하고 국채 매각에 나섰던 것입니다. 그곳은 인프라도, 농장도 없는 황량한 미개척지였지만, 그는 355페이지짜리 가이드북을 만들고 위조된 공식 문서와 화폐까지 발행하는 등 대규모 마케팅 캠페인을 벌였습니다.

맥그리거는 자신의 군 경력을 이용해 신뢰를 얻었고, “런던 사람들이 다 산다”라는 식으로 런던과 스코틀랜드 사람들의 경쟁의식을 자극해 투자를 유도했습니다. “땅이 빠르게 팔리고 있다”는 경고를 통해 ‘놓칠까 봐 두려워하는 심리(fear of missing out)’를 자극해 사람들을 조급하게 만들기도 했습니다. 가상의 국가에 대한 상세하고 그럴듯한 스토리를 만들어 사람들의 신뢰를 얻었습니다.

수백 명의 사람들이 이 허구의 국가에 투자하고 이주까지 감행했지만, 도착 후 모든 것이 거짓임이 드러났습니다. 하지만 맥그리거는 책임을 부인하고 도망쳐 감옥에 가지 않았으며, 많은 부를 누리며 여생을 보냈습니다.

이 이야기는 우리 시대의 Fake News(가짜 뉴스)와 겹칩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가짜를 믿고, 심지어 스스로 퍼뜨리는 심리적 메커니즘이 똑같이 작동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기본적으로 ‘진짜’라고 가정한다

사람은 눈앞에 주어진 정보가 가짜라고 의심하기보다, 진짜라고 믿는 쪽이 훨씬 빠릅니다. 매 순간 모둔 정보를 의심한다면 사회생활이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이른바 ‘진실 기본 이론’(truth-default theory)이죠. 진실 기본 이론은 타인과의 의사소통에서 사람들이 기본적으로 상대의 말을 의심 없이 믿는 경향을 설명하는 커뮤니케이션 이론입니다.대부분의 사람들은 특별한 의심 신호가 없으면 타인의 발언을 자동적으로 진실로 받아들입니다.
거짓일 것이라는 명백한 증거나, 의혹을 느낄 만한 구체적 계기가 있을 때에만 진실 기본 상태에서 벗어나 거짓을 의심하게 됩니다.
이 기본 성향 때문에 사람들은 Fake News도 첫 순간에는 ‘사실’로 받아들입니다.

권위와 포장에 쉽게 설득된다

국기, 지도, 외교 문서 같은 포장은 권위감을 줍니다. Fake News도 전문가 인터뷰, 그래프, “연구 결과” 같은 외피를 둘러쓰며 신뢰를 얻습니다. 외양이 그럴듯하면 내용도 그럴 것이라는 착각이 생깁니다.

욕망은 의심을 마비시킨다

그 나라가 ‘신흥 자원 부국’이라는 말에 투자자들은 검증보다 먼저 뛰어들었습니다. Fake News 역시 “남들이 모르는 사실” “충격 고백” 같은 희소성과 욕망을 자극합니다. 욕망은 회의적 사고보다 강력한 동기가 됩니다

.속았음을 인정하기 싫다

가짜 나라 사건의 피해자들처럼, Fake News를 퍼뜨린 사람들도 나중에 “내가 속았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어렵습니다.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방어하고 공유합니다.
이는 인지 부조화와 확증 편향이 결합한 결과입니다. 가짜 뉴스가 끈질기게 살아남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맺으며

가짜 나라를 믿은 사람들은 어리석어서가 아니었습니다. 인간 심리의 기본 작동 방식이 그렇게 이끌었을 뿐입니다. Fake News가 무서운 이유도 바로 이것입니다.
문제는 단순히 사실이 틀렸다는 데 있지 않습니다. 우리 각자가 스스로 속임에 동참한다는 점이 훨씬 더 무섭습니다.

가짜뉴스가 빠르게 퍼지는 이유 중 하나는, 사람들이 얼마나 쉽게 암시에 휘둘리는가와도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피암시성(suggestibility)이라고 부르는데, 말 그대로 외부의 정보나 분위기에 얼마나 쉽게 영향을 받는지를 뜻합니다.

혹시 나도 모르게 남이 하는 말에 잘 끌려가거나, 확인하지 않은 이야기를 쉽게 믿는 편인가요?

간단한 문항으로 자기 점검을 해 보시면, 내가 가짜뉴스나 선동적 정보에 얼마나 취약할 수 있는지 가늠해 보실 수 있습니다.

댓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