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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우리는 늘 ‘내가 옳다’고 믿는가 – 나이브 리얼리즘의 함정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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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우리는 늘 ‘내가 옳다’고 믿는가 – 나이브 리얼리즘의 함정

umentia 2025. 7. 21. 16:25

 

“나는 있는 그대로 말했을 뿐인데, 왜 그렇게 받아들이지?”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틀린 건 아닌 것 같은데…”
우리는 종종 이런 생각을 한다.
그리고 어느 순간, 깨닫는다.
상대도 똑같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을.

이런 상황에서 갈등은 시작된다.
하지만 문제는 의견의 차이 그 자체보다, ‘나는 옳고 너는 틀리다’는 확신이 동시에 작동한다는 점이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나이브 리얼리즘(naive realism)’이라고 부른다.
직역하면 ‘순진한 현실주의’.


말 그대로 “나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고 있고, 내 판단은 객관적이며 합리적이다”라는 믿음이다.
반대로, 나와 다른 견해를 가진 사람은 정보가 부족하거나, 감정적이거나, 편향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이 믿음은 일상 곳곳에 숨어 있다.

정치 이야기를 할 때, 우리는 상대가 왜곡된 시선으로 세상을 본다고 느낀다.

가족과 갈등이 생겼을 때, 우리는 “나는 그냥 사실을 말했을 뿐인데 왜 저렇게 반응하지?”라고 생각한다.

친구의 선택이 이해되지 않을 때, 우리는 “내가 봤을 땐 분명히 저건 아닌데…”라고 여긴다.


문제는, 상대도 똑같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모두가 ‘나는 옳다’고 믿을 때, 대화는 설득이 아니라 대립이 되고 만다.


사회심리학자 리 로스(Lee Ross)는 이 현상을 실험으로도 보여줬다. 참가자들에게 같은 이미지를 보여주고 해석하게 했더니, 자신의 정치적 입장에 따라 전혀 다른 판단을 내렸다.그리고 상대방의 해석에 대해 “왜곡됐다”, “감정적이다”라고 비난했다.
하지만 정작 자신의 해석은 “있는 그대로 본 것”이라 여겼다.

우리는 모두 자신의 눈이 ‘렌즈’가 아니라 ‘창문’이라고 믿는다.렌즈는 왜곡될 수 있지만, 창문은 세상을 투명하게 보여준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이브 리얼리즘이 위험한 이유는,우리가 서로 다른 현실을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잊게 만든다는 데 있다.
상대의 관점에 대해 “그럴 수도 있겠네”라고 말하는 대신,“왜 저렇게 비합리적이지?”라고 판단하게 만든다.

이 믿음은 갈등을 심화시킨다.설득하려는 말은 곧 ‘가르치려는 말’이 되고, 대화는 ‘이해의 장’이 아니라 ‘논쟁의 무대’가 된다.
결국 감정만 상하고, 서로에 대한 신뢰는 더 멀어진다.


우리는 모두 자기 나름의 현실을 살아간다.문제는 그 현실이 유일하다고 믿는 데서 출발한다.진짜 성숙한 대화는 ‘상대의 현실’을 잠시 빌려보려는 시도에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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